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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늦가을이다. 집 앞 늙은 느티나무의 잎은 하루가 다르게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퇴장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이 시간, 문득 생각나는 시가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이다. 시인이 195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시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가을의 기도>-
 

 

낙엽이 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축복하는 시이다. 푸른 잎의 빛나던 시절은 떠나가고 그제야 우리는 오롯이 신을 마주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겸허한 말로써 기도를 드리고, 신을 향한 참사랑을 노래한다. 


누구나 욕망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가 무성하던 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걸 버렸을 때일 것이다. 화려한 공작새가 아니라 가난한 까마귀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스스로 골짜기에 핀 백합이라 하신 절대자가 함께하신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 가장 큰 축복은 /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 마지막이 있다는 것”(서정윤, 축복). 김현승 시인의 시에서도 죽음을 읽는 이가 있고, 신앙이나 순결한 사랑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가을은 이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고, 그래서 기쁨으로 기도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201129 8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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