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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지금 앞에 놓인 성경이 한글이 아니라면? 아마 대부분 독자는 읽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오랫동안 라틴어가 원칙이었으며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15세기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1382년에 위클리프의 영어 번역본이 나와 있었지만 이 복음서를 읽다가 들키면 죽음에 처해졌다.


당시 한 재봉 직공이 이러한 교회의 횡포에 대항하다가 처형당했다. 김성한의 『바비도』는 이 먼 나라의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재봉 직공 바비도, 그는 왜, 어떻게 교회에 대항하였을까. 


15세기 초엽 헨리 4세가 집권하던 영국은 교회의 독선과 부패가 극심하였다. 특히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 복음서를 몰래 읽다가 적발되면 사형에 처해졌다. 주인공 바비도 역시 번역 성경을 읽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진다.


그런데 성경 모임의 지도자들조차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죄라고 인정한다. 바비도는 그들의 비겁한 모습에 분개하면서 자신을 끝없이 회유하려고 하는 교회 세력의 거대한 위선을 절감한다. 그들은 단지 ‘힘’이 있기에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남을 억압하는 것이다.


재판관은 바비도에게 번역 성서를 읽은 것을 죄로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인정하는 말 한마디면 살 수 있지만, 바비도는 거절한다. 자신들이 힘이 있다고 하여 죄가 아닌 행동을 죄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비도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면서 ‘인간 폐업’을 선언한다.


결국 그는 처형장으로 끌려간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때, 태자 헨리가 나타나 죄를 반성하기만 하면 목숨을 구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바비도는 ‘지옥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던지며 사형대에 오른다. 


바비도의 몸에 불을 지피는 순간, 갑자기 태자 헨리가 불을 끄고 바비도를 끌어내리라고 명령한다. 바비도의 용기와 신념에 감동하여 무조건 살려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비도는 이를 뿌리치고 당당히 사형대에 올라 화형을 당한다.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의 밧줄에 묶여서 라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것이란 말이냐?


이 소설이 꼭 신앙 이야기만은 아니다.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화형의 길을 택한 바비도처럼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작품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처럼 누구에게나 자유의지는 소중하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가 있고, 생각의 자유가 있으며, 말의 자유가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스도 정신은 바로 이렇게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일 것이다.

 

210620 8면 문학과 신앙(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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