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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그리스도 안에 죽는 만큼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화한다

posted May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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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


그리스도 안에 죽는 만큼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화한다

“무서워 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마태 28,5-6) 실망과 좌절, 의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빈 무덤을 가리키며 두 천사는 전대미문의 선언을 한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여러분!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감돌고 힘찬 생명의 싹을 터뜨리는 초목들을 통해 새삼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게 되는 이때,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살리면서 자기 자신은 살리지 못하는구나“(마태 27,42)하며 비웃는 야유와 치욕 가운데,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비참하게 숨지셨고, 시체는 내려져 무덤에 묻히고, 큰 돌로 무덤 입구는 막아져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봉인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것만 같았습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나」는 외침도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한 거짓 예언자의 잠꼬대인양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영 침묵속에 삼켜지고 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빈 무덤을 보고도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요한 20,2)”하고 의심하며, 예수일당으로 몰려 피해를 당할까봐 공포에 질려 문을 닫아 걸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이,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예수는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그 중인이다”(사도행전 1,1-31 참조)고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은 “예수는 부활했다”는 사실을 외치다가, 유언비어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들로 몰려 죽어간 것입니다. 완전한 좌절과 실망과 공포의 상태에서, 생명을 내걸고 예수의 부활을 외치며 죽어갈 수 있도록 사도들을 변화시킨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4복음서는 한결같이, 사도들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발현을 보고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예수는 부활했다”는 사도들의 외침으로 시작되었고, 수많은 박해와 시련속에서도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2천년 동안 인류 역사를 꿰뚫으며 성장해온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 형을 받고 죽은 한 사형수를 주님으로 믿는 교회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실험으로 증명될 수 있는 자연과학적인 진리만을 받아 들이려고 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예수 부활”이란 너무나 공허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동란이 실제로 이 땅에 일어났듯이, 서기 30년경 이스라엘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예수부활 사건의 역사성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했다”는 이 믿음위에 세워진 교회야말로 부활의 역사성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예수부활에 대한 가장 힘있는 산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이 없었다면, 교회는 생겨날 수도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바탕일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기초이며, 영원한 삶에 대한 우리 희망의 보증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부활의 역사성을 믿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머리로 믿고 수긍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을 사는 것은 그 역사성을 믿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과 승천에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빠스카의 신비라고 합니다. 사실 수난과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바라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을 외면하곤 합니다. 십자가 없는 승리와, 죽음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한 삶을 희구하며, 죽는 순간까지 그 염원을 벌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며 그것을 선전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의지할 신(神)을 필요로 합니다. 권력과 부는 바로 현대인의 우상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부(富)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염원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데 있어, 실제로 죽음을 넘어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더 참된 가르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영원한 삶에로 이끌어주는 진리임을 증명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가르침이 어떤 철학자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살아감으로써 그분의 부활에 동참하는 신앙만이 진정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시어 죽는 순간까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루가 23,34)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신 그 철저한 사랑으로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으로 바치는 「고통받는 종」으로, 모든이의 구원을 위한 속죄양이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죽이며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루가 22,34)하신 아버지께 대한 그 순종으로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아버지와 인간에 대한 철저한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그 영원한 삶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자신에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 봅시다.
함께사는 이들의 부족에 관대하고, 남을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과 싸워왔습니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얼마나 내 놓았습니까? 정의를 힘있게 부르짖기 위해 나 스스로 얼마나 정화되려고 노력하였습니까?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대신, 정의 편에 섬으로써 당하는 고통을 얼마나 용기 있게 받아 들였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 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로마 6,4)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신앙 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묵은 인간은 매일 죽고 그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적인 부활은 세상 종말에 완성될 것이지만, 하느님의 모습인 우리 인간 안에 있는 부활의 씨는 매일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나날이 움트며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300년대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칼 아래 피를 흘리는 박해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피 흘리는 박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만과 부패의 늪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높이 치솟고, 예비신자가 많이 몰려와 신자가 늘어나고, 교회 재정이 풍부해지고, 성소가 많다는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서구 교회도 수 백년동안 번창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르는 삶,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는”(요한 12,24)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적인 풍요와 세속적이 특권과 안일에 안주 함으로 무기력하고 민중들로부터 배척받는 교회가 되었음을 깊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증거의 해’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신앙을 내면에서부터 쇄신시키고 성숙시킴으로 우리 신자 모두가 각자 처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기 위해 매일 죽고 또 부활하는 산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죽는 그 만큼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에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1985년 4월 7일 부활대축일에
천주교 마산교구장 주교 장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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