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담화

1987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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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성 탄 메 세 지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리며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전한 기쁜 소식을 전하고저 합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 보는 표이다」(루가 2,11-12)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우리에게는 보람있는 일도 있었고 또 동시에 가슴을 조이는 안타까움과 불안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눈물을 통해서 독재 권력에 의해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민중의 힘이 소용돌이 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지난 6월은 서릿발같은 현실의 거죽을 제치고 민주화의 염원이 승리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한 순간이었고 새 시대를 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체험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정녕 밝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 나라를 이끄는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사람들에게서 여전히 횡행하는 폭력과 거짓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시대와 삶에 대한 진실된 회개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낡은 시대의 모든 기득권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고, 미래의 희망 대신 두려움이나 불안이 크게 자리 잡아 갑니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은 묵살당한채 어제의 동지였던 이들이 자신의 이익앞에 사분 오열하며 끝내는 반쪽의 좁은 땅덩어리 안에 새로운 분열을 가져와 다시는 치유하기 힘든 또 하나의 응어리를 잉태케 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러한 때에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약속하신 바 대로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춰 올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이사 9,1-6)
하느님이 이 세상을극즌히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들의 상상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는 웃음거리요 어리석음(1고린 1,23)으로 까지 여겨졌습니다. 권능과 엄위의 하느님이 사람의 도움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갓난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요 주인이신 분이 방 한칸 구하지 못해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으며, 일생동안 「머리 누일 곳 조차 없는 분」(마태 9,20)으로 사셨습니다. 그분은 권세있는자, 부요한 사람, 으스대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나병환자들, 불구자와 차녀들, 억눌린 사람과 사귐으로 죄인들의 친구라 불리셨습니다. 그분은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온 삶으로 끌어 안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속한 이들이 파묻어 버리려 했던 사회의 불의와 부정, 지배계층의 위선과 거짓을 고발하고 진실과 정의, 참된 평화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은 어두움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증오하였고 끝내는 십자가 위에 못받아 그분을 제거하였습니다. 마치 하늘 나라가 줄곧 폭행을 당해 왔듯이 (마태 11,12) 예수님도 그 당시의 공권력에 의해 높이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못받힌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불의와 거짓과 폭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궁극적인 승리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신을 송두리째 비우신 헌신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필립 2,6-9)
하느님은 저 높은 하늘 위에만 계심으로 인간의 처지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인간 역사에 개입하심으로 사람들과 갗은 처지가 되시고 자신을 미우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입으로만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임마누엘(마태 1,23)이신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손해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 개인의 안녕에 안주하는 사람이기 보다 참된 평화를 위해 헌신하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불의와 거짓을 거부하며 정의와 진실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인, 일치와 화해를 위해 사랑과 용서로 무장한 그리스도인, 무엇보다 세속의 똑똑함을 쫓아 살기 보다는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쫒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 속에서 연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까닭은 그 아기의 모습에서 참 지도자, 섬기는 주, 고난받는 야훼의 종,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국민의 바램인 민주화와 참된 평화의 염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차게 성취되기를 빕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오늘 여기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1987. 성탄절
천주교 마산교구장 주교 장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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