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22.11.30 16:06

최우선적 필요

조회 수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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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태 마태오 신부/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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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방송국에서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아마존의 자연과 원주민들의 삶이 자본가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방송인데 그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아마존 원주민들이 티셔츠 하나를 얻기 위해 원숭이를 사냥하는 모습이다. 본래 벌거벗은 채로 생활하는 아마존 원주민들에게 티셔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인데 그 불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불필요한 사냥과 살육을 저지르는 것이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아마존의 세계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파고들어 원주민들의 삶과 생태계를 피폐하고 황량하게 만들어가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 외에도 다큐멘터리 안에는 원주민들의 원숭이 사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대 자본 세력의 끔직스런 ‘아마존 사냥’에 대한 기록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아마존에서만 일어날까? 아니다. 이 세상 구석구석,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일상처럼 반복되는 비극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1차적 필요와 2차적 필요 그리고 3차적 필요라는 것이 있다. 1차적 필요는 ‘생존’과 관련된 것이고 2차적 필요는 ‘편리’와 관련된 것이며 3차적 필요는 ‘패션, 맛, 기호’와 관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통해 1차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2차적, 3차적 필요들을 충족시킨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1차적 필요를 충족시킬 때보다 2차적, 3차적 필요를 충족시킬 때가 비용이 훨씬 많이 들게 된다. 편리와 패션과 맛과 기호를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는 1차적 필요의 값은 대중교통비 몇만 원 혹은 몇천 원이면 되지만 여기에 편리와 패션과 맛과 기호라는 2차적, 3차적 필요가 더해지면 그 값이 몇천만 원 혹은 몇억 원도 될 수 있는 거다. 고가의 해외 명차들을 상상해 보라! 어쨌든 돈만 많으면 2차적, 3차적 필요에 몇억이 아니라 몇십억이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돈 가지고 자기 맘대로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있다. 즉 나의 2차적 필요나 3차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1차적 필요를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 배 불리겠다고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노조를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 조금 편하게 살겠다고 이 땅의 아름다운 산하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송전탑을 세우고 핵발전소를 지어서는 안 된다. 자전거 탈 사람도 없는 곳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 공원을 만든답시고 평생 농사지으면서 자식들 가르치고 먹이며 살아온 농민들을 쫓아내고 농토를 갈아엎어버려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아파트와 상가를 짓겠다며 판잣집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거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가난한 나라에 보내면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곡식들을 육식용 가축의 사료로 소진시켜서는 안 되고 육식용 가축의 대량 사육을 위해 거대한 삼림을 불태워서도 안 된다. 부자들의 몸치장을 위해 수많은 여우와 밍크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고 수많은 아이들을 일당 50센트에 죽음의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내몰아서도 안 된다.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다면 병원비가 되고 집세가 되고 등록금이 될 수 있는 돈을 그저 금고 속에만 쌓아두는 것으로 보람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는 모든 필요에 앞서는 ‘최우선적 필요’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이야기하는 ‘구원’ 즉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의 생존이라는 1차적 필요보다 더 우선한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위한 최우선적 필요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는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잘 지키라는 가르침과 함께 다음과 같이 이르신다.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1) 즉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최우선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 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4-36.40) 나의 2차적, 3차적 필요들을 참아가면서 1차적 필요도 채우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 우리의 최우선적 필요는 그런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아마존의 눈물’, 더 나아가 ‘지구의 눈물’ 또한 그렇게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의 어리석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 그 어리석음이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함에 있다. 그저 허물어진 곳간에 썩어 없어질 곡식과 재물만을 채우는 데 급급하고 가난한 이웃의 1차적 필요마저 외면한 채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며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다가 결국 영원한 생명을 향한 최우선적 필요도 채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어리석음이라니(루카 12,16-21; 16,19-31 참조)! 이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정녕 “필요한 것은 한 가지”(루카 10,42) 바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하느님 닮은 사랑’임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하겠다.

 

출처 : 월간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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