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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찬 안셀모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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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도 공동체 형제들과 함께 연피정을 하던 중, 식사를 마치고 계단을 오르는데 어느 선배 수사님이 옆에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바람이 지나가니, 폭풍우가 몰아치지~” 무슨 말씀인가 하고 수사님 얼굴을 쳐다보니, “안셀모 신부의 부산 분원 소임이 비바람처럼 힘들었을 텐데, 이제 새로 맡은 본원장 소임은 폭풍우처럼 더 힘들지”라는 의미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슴에 뭔가 뭉클한 것이 북받쳐 오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뻔했습니다. 그것은 위로받는 느낌, 이해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형제들은 이미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수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수사님, 그럼 폭풍우 다음에는 무엇이 오나요?” 그 수사님은 털털한 웃음과 함께 “산 넘어 산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폭풍우 다음에는 ‘따뜻하고 시원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산 넘어 산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데 피정 중에 가만히 그 수사님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과연 힘든가?’ ‘지금 나의 삶은 폭풍우처럼 그렇게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 외적으로 볼 때 해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공동체와 수도 형제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각종 원고와 피정 지도, 강의, 면담, 대외적인 역할 등 하루하루가 분주한 날들이지만 이 모든 일들이 힘들고 고달프게 만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매일 수도원의 규칙에 따라 기도하고 일하는 공동체의 삶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제들이 함께 살아가지만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고 고마운 마음이 생겨납니다. 일이 많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예전에도 지금처럼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아마 그 원인은 ‘하느님의 일을 내가 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의 일을 예수님과 함께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 못하는 일은 성령께 맡겨 드리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리고 수도원의 일과가 끝나면 꼭 휴식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힘든 사건이나 사람들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완벽하지도 않고 자신의 삶이 완전한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겸손하게 다른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그 모든 시련은 더 큰 사랑으로 건너가기 위한 도구요, 우리를 성장시키는 삶의 여정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 같습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집착인 것 같습니다. ‘내 뜻’을 버리고 포기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주님 십자가 앞에 머물면 주님의 영이 마음 안에 평화를 심어 주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한편 저는 그 수사님의 “비바람이 지나가니 폭풍우가 몰아치지~”라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이 되어 주는 것, 상대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많이 힘드셨겠어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울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것도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리고 지난 2년 반 동안 마산교구 주보 연재를 마무리하며, 하느님의 위로와 한결같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신 많은 마산교구 교우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비바람이 몰아치던, 폭풍우가 닥쳐오고 산 넘어 산처럼 막막해 오더라도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다 이겨 낼 수 있고 그 어떤 시련도 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꼬옥 안아 주시며 “많이 힘들었제! 내 니 마음 다 안다”라고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시며 위로해 주심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변함없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힘든 마음, 억울한 마음, 서러운 마음 모두 다 주님께 맡겨 드리고 더 큰 선으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고 오늘도 묵묵히 말없이 사랑하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우리 마산교구 교우들이 되시길 빕니다. 아멘.

 

※ 박재찬 신부님의 원고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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