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성
2021.08.26 13:16

마음, 비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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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찬 안셀모 신부/ 분도 명상의 집

|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마음, 비워지나?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비울 수 있나요?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신자라고 반드시 욕심 없이 살아야 하나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마음을 채우고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데 미숙한 이들을 만나면 너무 답답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비우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 다가올 때에도 ‘그래 내가 마음을 비워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겠노!’ 하면서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합니다. 사찰을 방문해도 참 자아를 찾기 위해 먼저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을 비우는 것일까요? 욕심을 버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일까요? 


제가 토론토에서 공부하던 시절, 도시 근교에 있는 동방 정교회 수녀원을 여러 곳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들께서 수도생활과 영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obedience)’의 영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과 수도회 장상에게 순종하는 가톨릭 수도자의 영성과 비슷하다는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종에 대해 곰곰이 묵상하다 보니,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해답을 저 나름대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 비움(Kenosis, self-emptying)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필리피서에 예수님의 자기 비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2,6-8)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순종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름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성모님께서도 가브리엘 천사의 예수님 탄생 예고 소식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순종과 성모님의 순종이 바로 자기 비움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기 비움은 단순히 욕망을 없애거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내 뜻대로 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해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비워집니다. ‘성당에 갈까 말까’, ‘기도를 할까 말까’, ‘선행을 할까 말까’, ‘용서를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마음은 점점 비워지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비워진 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살아갈 때 영적인 자유로움이 찾아옵니다. 그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행하여도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 식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해 놓고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식별을 위해 영적 지도자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영혼이 계속해서 메말라 가서 결국 자신의 뜻을 자주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이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자주 선택하게 됩니다.  


기도와 배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고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며 순종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비워지는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막힘없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미숙한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함께 살게 됩니다. 자신도 예수님 없이는 미숙한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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