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2023.10.12 09:52

곡선 같은 직선, 직선 같은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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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어느 날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시집을 엮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옆구리로 말이 들려왔다. “전혀!”라고 냉정하게 대답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전혀’는 ‘전혀’ 먹히지 않고 세 번째 시집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2021.불휘미디어)가 되어서 나왔다. 사실 인생은 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분명히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내 길이 나오고는 했다. 하느님의 손길은 때로는 ‘곡선 같은 직선’이고 동시에 ‘직선 같은 곡선’이기도 했다. 예수님의 붉은 몸이 걸린 십자가를 보면 늘 피하고 싶고 동시에 안고 싶은 마음이 순간 교차한다. 시인이기에 시를 써야 하지만 때로는 시가 나올까 두려워 피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시대 속에 머물 듯 시도 시대를 비껴갈 수 없었다. 하느님의 손길이 이끄시는 대로 시를 쓰는 일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4·3항쟁,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과 함께 4대강 사업, 제주 강정마을, 용산 참사, 밀양송전탑 등을 시로 썼고, 북녘땅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그 순간을 하느님의 손길로서 잊지 않으려 시로 기록했다. 무엇보다 2014년 세월호 침몰 3일 후부터 16편의 연작시로서 아이들과 약속한 대로 그들의 피지 못한 꿈들을 잊지 않으려 기억했고 앞으로도 써나갈 것이라고 시인은 별이 된 아이들에게 말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를 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은 니네베의 요나가 피하고 싶었던 그 마음 그대로였다. 그러니 피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 얹는 일은 기도 속에 담긴 마음과 같다. 그러기에 ‘아멘’이란 신앙고백은 시인에게는 또렷한 마침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아픔을 역사의 뒤안길에 두지 않고 다시 주님 앞에서 생명과 평화로 승화시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전하는 일 역시 ‘곡선 같은 직선, 직선 같은 곡선’의 길이다. 그것이 시인으로서 연필 쥐는 법을 배운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집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의 제일 끝에 실린 졸시 <하느님의 출석부>는 시인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기를 머리 숙여 바라본다.


하느님은 사람만 부르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람을 부르듯이/ 잠자는 동물과 깨어있는 식물/ 검은 구름과 푸른 강물/ 낙타 발자국이 선명한 모래와 말라비틀어진 나무 조각까지/ 잊지 않고 부른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는 것만 부르지 않는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는 것을 부르듯이/ 그대의 걱정과 나의 눈빛/ 함께 걷던 길 위의 마음과 돌아누웠던 숱한 날들/ 아프다 말할 수 없던 아픔과 순한 미소 뒤의 눈물까지/ 잊지 않고 부른다// 하느님은 출석부에서 부를 것을 다 부른 다음/ 끝자리에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사랑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그대 보이는가/ 사랑이라 불리는 온기가/ “예!” 하고 그대 앞에 다가오는 모습을/ 끝자리 온기가 지닌 핼쑥한 얼굴과 저 가난한 표정을/ 하느님은 사랑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하느님의 출석부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난다

 

 

231015 김유철 문학과 신앙 표지(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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