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4.04.30 16:38

사람 낚는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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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순화 베로니카 시인

올해 나는 상담심리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틈틈이 공부하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내가 상담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10년 전 나를 찾아온 한 학생 때문이었다. 어느 날 죽고 싶다고 찾아온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기에,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그가 자신의 삶을 꽃피우기도 전에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팠고, 나를 믿고 찾아온 그가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상담 공부의 종지부를 찍으며, 그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마태 4,19)라고 하신 말씀대로 비로소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유독 나의 눈에는 마음 아픈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눈동자는 유난히 애처로워 보였다.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마음 둘 데 없는 그들은 생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기꺼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의 무거운 삶을 전부 짐 지기에는 늘 벅찼다. 또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들의 상처를 온 마음 다해 들어주고 나면, 내 마음도 오랫동안 쓰라리고 아팠다. 때때로 그 아픔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스스로 무너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이들의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생의 마지막 희망을 주님께 간절히 청하였을 때, 유년 시절 나를 아껴주던 선생님을 15년 만에 성당에서 재회하게 해 주셨고, 그간 상담사가 되신 선생님께서는 내가 온전히 설 수 있을 때까지 상담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살아났고, 이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예수님은 내가 받았던 것처럼 아픈 사람들의 곁을 지켜주라고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들이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주님은 나를 이들에게 보내시기 위해, 나를 몇 년 동안은 바닥 같은 인생을 살게 만드셨고, 또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나를 다시 끌어내 살리셨으며, 지금은 나를 상담사로서 키워 주신 것 같다.


이제 나는 안다. 어린 나이에 큰 아픔을 겪었던 나의 과거는 더 이상 내게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큰 그릇을 지니도록 주님께서 일찍 나를 선택하시어 빚어 주셨음을……. 그래서 나는 선물처럼 주어진 남은 생은 주님의 뜻에 따라, 마음 아픈 이들에게 희망의 숨을 불어넣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주님께서 직접 빚으신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가 비로소 되었으니, 그들이 더 큰 바다로 헤엄쳐 갈 수 있도록 나는 어떤 풍랑에도 항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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