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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요구에 순종한다. 왜 그랬을까? 이 끔찍한 성경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은 그 답을 찾는 작품이다. 이는 작가의 소설집 『사랑이 한 일』에 실린 5편의 연작 가운데 하나인데,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 창세기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소설집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거나 찡그려졌다.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도,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내게 발견된 열쇠였다.


작가의 이 설명처럼 『사랑이 한 일』은 이 성경 속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하느님도 아브라함도 아닌, 희생의 당사자인 ‘이삭’의 눈으로 답을 찾고자 한다. 하느님의 요구,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아브라함…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40년 동안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하여 집요한 탐구를 해온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문장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 대한 사랑인가? 누구의 사랑인가? 그리고 그 사랑이 조금 덜했다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작품은 집요하게 묻고, 그 물음에 대해 이삭 스스로가 답을 하는 형식이다. 


사랑하지 않거나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누가 시험하겠는가, 누가 굳이 자신 안의 간절함과 초조함을 들키고 싶겠는가. 먼저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시험한다. 사랑을 시험하는 자는 이미 사랑하고 있는 자이다. 시험하는 이인 신이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 이야기가 아브라함의 순종을 시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지닌 사랑에 대한 스스로의 시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희생양’이 될 뻔했던 이삭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 이삭의 배를 가르려는 순간, 하느님의 다급한 음성은 바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불가능한 과제를 제시하고 아브라함이 그 과제를 어떻게 푸는가를 무심하게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사랑하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아브라함을 사랑하며, 그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주어진 불가능한 과제를 제대로 헤쳐나가지 못할까 봐 더 걱정하는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그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다.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뛰어넘는 것도 아니고 시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210718 8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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