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07.15 14:42

‘영원한 너’를 향해

조회 수 101
Extra Form
저자 윤선희 드보라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꽃’은 ‘의미’를 일컫는다. ‘몸짓’에 불과하던 존재가 ‘이름’을 통해 ‘의미’가 된다. 세상에는 무수한 꽃이 있지만 제대 앞을 장식하는 꽃은 오직 그 꽃이기에 그 또한 ‘의미’가 된다. 나는 본당 제대꽃꽂이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번갈아가며 제대에 꽃을 꽂는다. 내 차례가 되면 먼저 전례나 말씀에 따른 전체적인 구상을 하고 구조물을 만들거나 색깔이나 상징하는 바를 생각하며 꽃을 선택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의미가 보여 지길 바라며 꽃꽂이를 한다. 이 꽃들은 의미체가 되며 내게는 여타의 꽃들과 달리 보인다. 꽃을 꽂다 보면 가끔 멘붕에 빠지기도 한다. 꽃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번 옮겨 꽂으면 플로랄폼은 구멍으로 뒤덮여서 본래의 의도대로 꽂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이 되어 허둥거리는데, 주변의 회원들이 나서서 괜찮다고 격려하고 거들어서 마무리를 한다. 간신히 마친 꽃꽂이가 그리 밉지 않고, 서로를 향해 수고했노라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땐, 마음이 따뜻한 뭔가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좋은 마무리만 있는 건 아니다. 대축일이나 세례, 견진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날에는 온종일 제대꽃꽂이 뿐 아니라 꽃바구니, 꽃다발까지 만드느라 지치고 예민해져서 공격적이 되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나 부릴 못난 성미를 부리고는 자책감에 며칠씩 끙끙거리기도 한다.


마르틴 부버의 책 『나와 너』에서 세상을 ‘나-너’의 근원어에 바탕을 둔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질서와, ‘나-그것’의 근원어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질서로 구분했다. ‘나-너’의 질서 안에서 “사람이 그의 존재 전체를 기울여 관계에 들어설 때 ‘너’에게 응답”할 수 있는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모든 ‘너’는 본질상 사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오직 ‘하나의 너’이며 ‘영원한 너’인 하느님만은 그 본질상 우리에게 ‘너’이기를 그치지 않는다.” 나는 주님이 나를 불러주시고 귀히 여기심을 느낀다. 그러나 종종 다른 사람 또한 그렇게 불림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잊는다. 꽃을 꽂으며 힘들고 때론 절망스런 느낌이 들 때, 도움을 주고 말없이 뒷정리를 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그들 마음에 어떤 꽃들이 피는지 만져질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부버는 “모든 낱낱의 ‘너’는 영원한 ‘너’를 들여다보는 틈바구니”라 했다. 가까이서 한 존재 안에 핀 꽃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영원한 너’를 향한 우리의 여정일 것이다.

 

210718 영혼의뜨락(홈피용).jpg


  1. 어찌 믿지 않을 수가

    Date2021.07.28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63 file
    Read More
  2. 이삭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

    Date2021.07.15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70 file
    Read More
  3. ‘영원한 너’를 향해

    Date2021.07.15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01 file
    Read More
  4. 하느님의 침묵

    Date2021.07.15 Category신학칼럼 Views412 file
    Read More
  5. 한 가족, 안전한 우리 집 같은 성당으로 가꾸는 고성성당

    Date2021.07.08 Category본당순례 Views914 file
    Read More
  6. 정의와 양심, 그리고 진리를 위해 싸운 바비도- 김성한의 『바비도』

    Date2021.06.17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425 file
    Read More
  7. 사각지대와 국외자들

    Date2021.06.17 Category신학칼럼 Views291 file
    Read More
  8. 이제는 물 흐르듯

    Date2021.06.17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91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