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교구장 사목교서-“성체안에 하나되어”

by admin posted Nov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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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교구장 사목교서

1988년도 마산교구장 사목지침

“성체안에 하나되어”


머리말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1988년의 공동사목교서를 “성체안에 하나되어”로 정하고 성체성사 안에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쇄신을 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1986년을 “성체와 가정의 해”로, 그리고 1987년을 “성체와 교회의 해”로 보낸바 있습니다. 그리고 1989년엔 세계 성체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성체께 대한 신심을 몇 해 동안 강조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계 성체대회를 앞두고 그 준비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면적인 이유 외에 좀더 깊은 차원에서 그 이유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성체신심’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성체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신심의 차원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모께 대한 신심」「십자가에 대한 신심」「성인공경 신심」등은 우리의 근본 믿음을 북돋우는 보조수단으로서 신심의 차원이 될 수 있지만, 성체성사는 사실 우리 믿음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성찬의 식탁에 함께한 믿는 무리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에서 교회가 형성되어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체는 바로 교회의 바탕이며, 미사성제에 모인 모든 신자들이 바로 살아있는 성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단순한 신심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바탕이며 근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가장 큰 성사」「모든 은총의 해」「신앙생활의 중심」이라고 말해왔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영적(靈的) 전 재산이 내포되어 있다”(사제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5항)고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체성사를 주제로 한 사목교서를 계속 제시함은 단순히 세계 성체대회를 준비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선교 300년대를 사는 한국교회가 참된 내적 성숙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 믿음의 핵심이며, 신앙적인 삶의 참된 원리와 자세가 담겨있는 성체성사께 더 깊이 다가가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주교단이 계속해서 성체의 신비와 관련된 공동사목교서를 제시함은 참으로 필요하고 적절한 사목적 배려인 것입니다.

1. 성체성사안에 예수님의 전 생애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은 예수님의 생애 중 최후의 만찬 때 하신 하나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의 만찬 예식과 십자가의 죽음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시며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라고 하심으로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 그 죽음의 성격과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만찬은 앞으로 이루어질 십자가의 죽음을 전례적으로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의 만찬이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선언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전 생애가 십자가의 죽음안에 요약되기에 성체성사는 예수님 생애의 요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해봅시다. 예수님의 생애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더구나 십자가 달려서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필립 2,6-8) 그리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으며, 「병들고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놓으심으로 당신의 생명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생애였습니다. 이러한 겸손과 사랑과 헌신의 일생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로서 죄와 허물투성이인 우리에게 자신을 극도로 낮추어 오시고, 우리가 당하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시고자 하심으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체성사는 바로 예수님의 전 생애를 일관한 겸손과 사랑과 헌신을 역사 안에서 계속하는 성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를 이해하면 바로 예수님의 전 생애를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의 전 생애가 요약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하며 성체의 신비를 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생활의 마사화로 성체의 신비를 살아야 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루가 22,19)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4)
공관복음엔 최후의 만찬때 성체성사를 세우시지만(마태 26,26-29; 마르 14,22-25; 루가 22,17-21) 요한 복음엔 성체성사를 세우신 장면은 없고 세족례(13,1-20)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족례의 복음이 성목요일에 봉독됩니다. 세족례와 성체성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쉽게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성체신비의 참뜻이 세족례 안에 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때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루가 22,19) (공동번역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중대한 오역이라고 생각된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라」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단순히 미사예식을 되풀이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우리의 밥으로) 내어주는 삶, 즉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는 겸손과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아라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곧, 예수님께서 그 당시 하인들이 주인에게 하듯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에게 「스승이며 주(主)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하신 말씀과 꼭 같은 말씀입니다. 「이를 행하라」하신 말씀은 바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체성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며,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과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함을 세상 끝날까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성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성체 때마다 이점을 다짐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미사때 영성체를 하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는 삶이 될 때 우리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고 그 생명을 맛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그때마다 영성체를 한다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성체가 되어주는 (밥이 되어주는)삶,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과 나눔의 생활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는 거리가 먼 형식적인 의식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이를 행하라 하시고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이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 성체의 신비를 사는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미사와 영성체가 단순한 예식으로 끝나버리고, 생활과 미사가 동떨어진 신자생활은 살아 있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성체를 받아모시는 생활에서 실제로 성체의 신비를 사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의 이중성을 극복하고, 믿는 바를 사는 신앙인이 되는 일은 성체신비의 생활화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이를 행하라,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되새기며 거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하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몸」할 때 「아멘」하고 응답합시다. 서로 발을 씻어주는 자세가 형제간의 일치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는 고리임을 명심합시다.

3. 생활의 미사화로 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합시다.
우리는 「이를 행하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로 서로에게 밤이 되어주고, 발을 씻어주는 사랑의 생활이 될 때 크리스챤 생활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모신 우리는 매일의 생활 안에서 성체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과 아픔을 나누고, 사진 바를 나누고, 희망을 나눔으로써 진정한 사람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 받아 주십니다.”(히브 13,16) 하신 바오로사도의 말씀대로,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더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적게는 개인적인 생활에서부터 크게는 본당 신자 계층간에 나아가서는 도시본당과 시골 본당간에 이러한 나눔을 구체적으로 확산시켜가도록 교회내 모든 단체와 본당은 제 각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가진바를 서로 나누지 못한다면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한들 모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반 기도회야말로 신자상호간에 이러한 사랑의 나눔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함으로 나눔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참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교회인 것입니다.

4. 성체의 신비를 사는 것이 복음 전파의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유일한 사명입니다. 나날의 생활안에서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자신을 완전히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살아갈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큰 외침으로 울려퍼질 것입니다. 교회 숫자가 다방 숫자보다 많은데도 우리의 현실은 왜 이렇게 어둠기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훌륭하게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하거 긴급한 것은 교회가 예수님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참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개인적인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서 크리스챤의 사랑을 증거할 뿐 아니라, 본당 차원에서도 실질적인 나눔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할 거입니다. 빈첸시오 활동 뿐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본당 전체 예산의 5% 이상을 복지 기금으로 지역사회에 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5. 성체의 신비를 삶으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하기 위해 다음 몇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사목에 반영해야 하겠습니다.
1) 성체신비의 생활화를 위한 각 본당별 신자재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합시다.
2) 미사 전례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하도록 성가 및 전례교육을 강화합시다.
3) 성체조배를 생활화하고 매월 성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도록 합시다.
4) 성체의 신비를 사는 거룩한 가정교회가 될 수 있도록 매월 가정기도의 날을 실시하고, 모든 혼인대상자는 행가운에서 실시하는 혼인교육을 받도록 합시다.

맺는말
1988년은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화를 기약하는 해 일뿐 아니라,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외적 중요성 외에 또한 성모성년을 마감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가장 깊이 아시고 십자가의 죽으심에까지 깊이 동참하신 분이십니다. 구세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은 바로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미사 때 전례적으로 행하는 바를 실제로 사는 신자가 될 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드러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들은 주님의 복음은 우리들의 삶의 표양과 말을 통해 세상에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88년은 우리 모두 서로 밥이 되어주고, 서로 말을 씻어주는 삶을 통해 성체의 신비를 사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교회가 참으로 가진 바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선교 3세기를 사는 쇄신된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1987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마산교구장 주교 장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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