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21.12.27 16:29

권력과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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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태 마태오 신부/ 대전교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권세가 대단하다는 말이다. 멀쩡히 날아가는 새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것은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힘, 부당한 일까지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이 세상의 권력이란 그런 거다.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권한은 그런 권력이 미치는 범위요 한계다.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모든 권력은 곧 권한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권력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의무와 책임과 역할로 한정되고 법과 제도로 견제되는 힘 즉 권한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이 세상에서 실질적으로 행사되는 여러 권력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것’처럼 한계를 벗어난 힘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세상 현실 속의 권한과 권력은 서로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권한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는 평등하다. 마치 시계에서 초침과 분침과 시침이 존재의 차별이 아닌 역할의 차이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권력이란 크기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불평등하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비교우위와 차별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권한은 어떤 힘이 있을 때 그 힘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면 권력은 그 힘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권한이지만 정치인이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권력이다. 검사나 판사가 죄인을 벌하고 죄 없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은 권한이지만 검사나 판사가 죄인을 풀어주고 죄 없는 사람을 벌하는 것은 권력이다. 기자가 어떤 일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권한이지만 기자가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권력이다. 군인과 경찰이 적이나 범죄자에 맞서는 것은 권한이지만 군인이나 경찰이 국민 혹은 시민에 맞서는 것은 권력이다.


결국 직책이 가진 힘을 권한이 아닌 권력으로 여기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는 자리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굳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거나 좋은 자리라면 거기에는 권한이 주어지고 그 권한은 곧 권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욕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골 촌부나 감방 안에 있는 죄수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리 권력을 탐하는 걸까? 권력이란 것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 중의 하나이고(루카 4,5-8 참조) 제자들도 그 때문에 서로 다툴 정도였으니(마르 10,35-45 참조) 사람들이 권력을 탐하는 데에는 뭔가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찾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한 말이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이 말보다는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싶다.”라는 말이 더 실제적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에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고 또한 존중받고 싶어 한다. 나의 존엄함은 나에 대한 상대의 존중으로 증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에 대한 추구는 이와 같은 존엄성에 대한 욕구를 오로지 다른 이와의 비교와 차별을 통해 충족시키려는 행위일 것이다.


인간이 왜 존엄한지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뛰어난 존재라서 존엄하다는 이 생각은 얼핏 당연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 자체가 인간 존엄성의 이유를 비교우위에서 찾는 모습이다. 이는 사람들의 일반적 사고 안에 자리하며 사람들의 삶에 수많은 비교와 차별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는다. 생각해보라! 내가 동물보다 낫기에 존엄하다면 나보다 더 나은 존재 앞에서 나는 동물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위 공직자들의 입에서 국민을 개돼지라고 말하는 일이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존엄함이란 것이 그 무언가보다 더 낫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나보다 더 나은 존재 앞에서 나는 존엄할 수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교와 차별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폭력은 각자의 존엄함을 위한 정당한 행위로 자리하게 된다. 결국 권력의 폭거는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되고 그에 저항하는 행위는 그저 또 다른 권력투쟁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이 어찌 비교우위를 통해서 결정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 중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는 사실에서 온다. 나보다 못한 것과의 격차를 통한 존엄함이 아니라 세상 가장 존귀하신 분과 가깝다는 사실에서 오는 존엄함이다. 존엄함이란 것이 그런 거라면 세상에서 아무리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어도 인간은 얼마든지 존엄할 수 있다. 재산, 학력, 지위, 출신, 성별 등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존엄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세 1,26-27 참조).


인간의 존엄성이 그런 거라면 나의 존엄성이 드러나고 존중되는 삶이란 결국 나 스스로가 하느님 닮은 모습대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모습 안에서 지존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력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섬김’이라 가르치신다. 광야의 유혹 앞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 4,8) 그리고 높은 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비교와 차별의 권력욕에서 벗어나 모두가 참으로 존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가르침이다. 이는 또한 세상의 모든 권력이 공동선을 위한 참된 권한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지침이기도 하다. 사실 만유 위에 가장 존엄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을 섬기시는데(마르 10,45 참조) 그 누군들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으랴!

 

출처 : 월간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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