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1.04.22 15:34

같은 동물끼리 이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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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생명,살이 - 바우네 가족 이야기. 글 손승휘. 그림 이재현.


할머니는 아라가 퐁당이를 가졌을 때부터 아라를 당신의 허벅지에 눕혀놓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좋은 일이지만 힘든 일이기도 하단다. 네 아이를 위해서 네가 먼저 튼튼해야 해. 많이 먹고 편하게 쉬어야만 한단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 골라서 먹고 골라서 눕고 그래야 한단다.


할머니는 또 바우에게도 신신당부하셨다. -넌 이제 네 자식을 가지게 되는 거니까 네가 노력해야 한단다. 너무 멀리 나다니지 말고 항상 조심하렴. 화를 내거나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좋은 마음을 가지고 착한 일만 해야 해. 약속할 수 있지?


하느님께서 사람을 여자와 남자로 만드시고 함께 살아갈 삶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키우며 삶을 개척해나가는 일입니다. 여자에게는 생명선택권이 아닌 생명지킴권을, 남자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아닌 삶을 지켜내고 삶을 꾸려가며 성장시킬 힘을 주셨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하얀 친구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라가 자세히 보니까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운다. 아라는 슬며시 하얀 친구에게 가서 옆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친구들이 보면 우스운 모양이겠지만,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하얀 친구는 한동안 서럽게 울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잠이 든 하얀 친구 옆에 계속 있어주었다. 바우가 다가와서 아라 옆에 엎드렸다. 퐁당이도 따라와서 잠자코 아라와 바우 곁에 엎드렸다. 이상한 일이다. 친구들이 죄다 방으로 들어와서 하얀 친구처럼 엎드렸다. 달마도 누렁이도 초코도 모두 와서 나란히 엎드렸다. 그렇게 모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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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마음


달마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서 조용히 물러났다. 그때 앞쪽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사람도 달마도 서로 놀랐다. 컹! 달마가 짖자 사람도 놀라서 달마에게 막대기를 휘둘렀다. 달마는 그 순간 몸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달마는 막대기를 든 손을 물어뜯었다.


달마, 안 돼. / 저 사람이 나를 잡아가려고 했어. / 바보, 저 사람은 그냥 자기 볼일을 보려던 것뿐이야. / 나한테 올가미를 씌우려고 했다니까? /
그건 등산용 지팡이야. 할머니도 가지고 있던 거란 말이야. 넌 네 가슴속에 있던 미움을 이겨내지 못해서 아무거나 막대기만 보면 전부 올가미로 보이는 거야. / 정말? / 그래, 미워하는 마음. 그게 널 힘들게 하는 거야.


바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탓도 아닙니다.


바우는 친구들의 아우성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생각해 둔 게 없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생각해 두었어야 했다. 달마는 한쪽에 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친구들의 눈치만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바우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미리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야. 달마 아니라도 누구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야.


미, 미안해. / 아니야, 달마. 네 잘못이 아니야. 미안하지 않아도 돼.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반드시 책임자를 찾아야 할까요? 누구의 탓인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켜 죄인의 낙인을 찍어야 할까요? 나도 언제든 그럴 수 있고 누구의 탓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탓’은, 사람을 변명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하며,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게 만듭니다. 그렇게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 탓이오’라고 하는 건, 나를 자책하는 게 아니라 남 탓으로 돌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잘못은 누구나 합니다. 죄인이라 낙인찍힌 누군가도, 도움과 구원, 사랑의 대상입니다(마태 25,36).


약속


그런데 앞쪽에 사람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바우는 순간 결정해야만 했다. 사람은 두 사람에 불과하다. 그냥 달려들어서 돌파할 수도 있을까? 그러다가 급하면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할머니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언젠가 술에 취한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와서 행패를 부렸을 때, (다들, 술, 제발 조심하세요.) 바우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안 돼, 바우야. 할머니는 바우의 등을 토닥였다. 사람을 물면 안 돼. 넌 사람을 돕고 구하는 아이잖니. 절대 사람을 물면 안 돼, 평생. 약속하렴. 절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물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지? 


바우는 할머니를 사랑했고, 할머니의 말씀은 맞는 말이었다. 바우는 할머니와 약속했다.


약속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기반합니다. 하느님께서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며 율법을 주셨을 때, 백성을 한없이 사랑하겠다 먼저 약속하셨습니다. 백성은, 의무와 조건이 아닌 하느님과의 그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웃을 위한 구원자입니다.


같은 동물들끼리 이러기냐


얘 하나쯤은 괜찮을 거야. / 그냥 여기 머무르게 하자. / 어차피 큰 애들은 다 사라져서 이제 오지 않을 거야. / 보호소에서 데려간 게 아니라 개장수들이 가로챈 것 같아. / 쯧쯧. 안타깝게 되었네. / 하여간 인간이 참 잔인해. / 그런 말 몰라? “같은 동물들끼리 이러기냐?” / 맞는 말이다. 참… 


하양은 산장 사람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두 번 다시 자기와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혼자서”도


슬펐지만 어제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침착하게 배를 채우고 물을 마셨다. 산장과 눈 덮인 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싫어. 당신들에게 기대고 싶지 않아. 언제고 피치 못할 일이 생기면 당신들은 내 친구들처럼 나한테 해주지 않을 거야. 


친구들을 생각했다.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 추웠지만 포근했고 배가 고팠지만 편안했다. 좋았던 날들이었다. 못나고 한심한 우리들끼리 서로 돕고 위해 주었다. 


산장을 뒤로하고 천천히 산길로 향했다. 희망을 갖기로 했다. 친구들 중 누구라도 올 수 있다. 자기 도움을 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친구들을 기다리러 가자. -만일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나 혼자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면 어쩌지? 바우를 떠올렸다. 어디선가 바우가 대답한 것 같다.


바우야, 나 잘 해낼 수 있을까? / 응. 하양아, 난 널 믿어. 


예수바우께서 품으신 사랑의 힘은, 맨날 맨날 밤마다 산에 오르셔서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하신 홀로.의 힘입니다. 홀로.의 힘을 키운 이는, 우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서야 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를 믿고 너를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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