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
2021.11.04 13:13

죽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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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봉원 야고보 신부(교구 총대리)

프랑스 베네딕토회의 클리니Cluny 수도회 오딜로Odilo 원장은 998년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했다. 이런 관습이 보편화되면서 교회는 대사를 선포하며 11월을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는 ‘위령성월慰靈聖月’로 지내도록 했다.


죽는다는 것은 확실한 진리이면서, 동시에 불확실한 진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 앞에서 예외일 수 없고,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명상록 『팡세pensees』에 있는 말이다.


“40명의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 있다고 하자. 어느 날, 그들 중 한 사람이 죽으러 가는 모습을 나머지 39명이 쳐다보고 있다. 며칠 후 38명이 보는 가운데, 다른 한 명이 끌려간다. 또 나중에는 37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끌려 나간다.”

 
이러한 장면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자와 같다. 죄수들이 사형의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 역시 세상이라는 교도소에서 언젠가 있을 사형 집행의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 있게 아직 죽을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조만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만 있다면, 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 그래서 대체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마태 25,1-13는 ‘열 처녀의 비유’이다. 
비유에서 혼인 잔치는 하늘나라이고, 등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기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고, 신랑은 하늘나라의 주님이다. 슬기롭고 어리석음의 기준은 준비에 있다. 기름이 있는 처녀들은 언제라도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름이 없는 처녀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게을렀기에 준비하지 못했다. 신부와 함께 있는 들러리들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일은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등불을 켜는 일은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삶에서 가능하다. 나태한 학생이 시험을 잘 볼 수 없다. 기술의 습득도 인격의 함양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지금보다 나중에, 오늘보다 내일로 미루며 게으르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랑의 실천도, 신앙생활도, 희생과 봉사도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하겠다고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를 깨어 있으면서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부터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도 하고, 희생하며 기도도 해야 한다. 주님 말씀을 실천하며 작은 일에도 충실해야 한다. 그러할 때 하늘나라의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는 등불을 켜 들고 그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슬기로운 처녀들이 될 것이다. 


호스피스hospice 병동의 봉사자들에 의하면, 임종 직전에 가장 많이 하는 세 마디는 ‘그때 좀 참을걸’, ‘그때 좀 베풀걸’, ‘그때 좀 열심히 살걸’이라고 했다.


삶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죽음은 영생永生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잘 살아야 한다. 특별히 위령성월에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기도하면서 준비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 그러면 언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더라도, 하늘나라의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11107 2면 한말씀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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