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09.16 09:12

어쭙잖은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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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주언 레지나 시인

나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러 다니는 초등생 같다. 남들보다 늦게 입교했음에도 남들보다 나태하다. 해내야 할 일 가득한 일상이라는, 시원찮은 핑계를 대면서 다른 일에 먼저 끌려다닌다. 다행히 레지오에 소속된 덕분에 아침기도는 빠뜨리지 않는 편이다. 처음엔 보고를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으나 점점 자신을 위한 기도로 바뀌는 듯하다. 어쩌다 아침기도를 빠뜨린 날이면 찝찝한 기분이 든다. 의무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자율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그래서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보다. 스스로에게 코뚜레를 꿰어놓지 않으면 나태해지는 성향이므로 레지오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다. 신앙과 종교는 뉘앙스에서 약간 차이가 느껴진다. 신앙이 개인적 믿음과 가까운 것이라면, 종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레지오를 통해 신앙과 종교의 두 관점의 균형을 잘 이루고 싶다. 성전과 멀어지면 신앙이 위태해지고, 종교적 형식이나 인간관계에 휘둘려도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잊기 쉬울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가끔 “주님, 제 안에 계시지요?”라고 속엣말을 할 때가 있다. 요즘 시대에 신이 진짜로 있다고 믿느냐고 묻는 주변인에게 나는 말한다. 그럼 영적 현상들은 어떻게 해명할 거냐고, 어느 천체물리학자도 처음엔 신의 존재를 부정하다가 우주를 알아갈수록 미궁에 빠지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신은 세상의 이치이며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읽거나 주워들은 말로써 답한다. 독서 모임이나 스터디를 하다 보면, 어떤 이는 철학적 사유들과 자신의 종교관을 적절히 조절하며 신앙을 잘 유지한다. 반면에 모태신앙이었던 어떤 이는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하면서 종교를 떠났다고 했다. 나는 전자에 속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모자라고 미숙한 점이 많다.


요즘은 성전에 갈 때마다 레지오 자매를 따라 전대사 기도를 바친다. 기도문 중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라는 로마서 구절이 와닿는다. 늘 무언가를 성취해 주십사 기도하는 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로마서에 나오는 ‘환난’이 현대의 환난과 다른 의미이겠지만, 주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실 때도 환난을 주실 때도 결과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사실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야훼께서는 왜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주시지 않으실까, 환난과 두려움을 주셔야 사람들이 복종하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을 품은 적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의 삶은 기쁨, 행복, 슬픔, 고난, 불행 등 다양한 일상이 어우러져 진행되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환난에 대한 로마서의 이 구절은 많은 위안이 된다. 간절히 기도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과 원망을 가진 적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 그러니 주님, 뜻대로 하소서! 저에게 오는 모든 환난이 인내를 통한 수양과 희망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당키 어려운 환난은 내리지 마소서!

 

210919 3면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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