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8.11 09:07

어머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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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옥영 테오도라 시인

“하나아 둘, 하나. 눈 뜨시고요, 활짝 웃어보세요.”


온갖 꽃 장식으로 화사한 가운데 온 가족이 꽃보다 더 화사하게 차려입었다. 구순을 맞이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코로나로 자주 만날 수 없었던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서로 반가운 손을 마주 잡고 부둥켜안기도 하며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묻고 답하느라 왁자지껄하다. 분위기만으로도 친정어머니의 구순 잔치는 대성공이다.


‘겨울왕국’의 엘사 공주로 변장한 증손녀의 춤과 노래 공연에 이어 각자 준비한 선물을 드린다. 용돈 봉투와 꽃다발에 이어 건강식품을 비롯하여 금가락지와 옷가지며 손편지를 붙여 정성껏 포장된 여러 가지 선물이 어머니 앞에 쌓인다. 자녀 된 우리는 나름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맏사위의 건배 제안에 따라 “건강을 위하여” “가정의 발전을 위하여”를 외치며 축배를 든다.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폭죽을 터트리며 준비한 음식을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 90년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사신 어머니에게는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기념사진을 돌려보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분명 주인공으로 가족들 한가운데 앉아 웃음 짓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활짝 웃지 못하고 있다. 웃는 시늉만 하고 있다. 왜일까?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일까? 무슨 일 때문일까? 자꾸 어머니에게 눈길이 간다. 가만히 살펴보니 어머니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가족들이 각자 자유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어머니는 손짓으로 막냇사위를 빈 방으로 불러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둘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는 막냇 사위의 손을 꼬옥 잡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막냇사위는 사위대로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막내 부부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나, 30년도 전에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다 자란 아들이 가끔 부모 사이를 오가며 전하는 안부 정도나 알고 지낼 뿐, 남남으로 산다. 효심 깊은 막내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합쳐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아들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여러 차례 부탁을 한 모양이다.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뻔히 알지만, 우리 모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를 반겨주었다.


어머니 마음에는 이런 막내딸의 일이 가슴에 대못으로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울컥, 응어리가 북받쳐 오른다. 우리가 세상에서 온갖 좋은 것들로 효도 선물을 드린다 해도,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거나 가정이 파탄되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어머니 마음에는 아들딸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일 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일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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