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6.21 15:32

제가 바리사이입니다

조회 수 46
Extra Form
저자 이선향 안젤라 아동문학가

참으로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사람들! 
코로나 이후 미사 참례하는 교우들의 수는 줄고 새롭게 주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세례자 수도 줄어들었다. 이런 때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겠다고 우리 성당을 찾아온 예비신자들은 얼마나 반갑고 기다리던 소중한 사람들인가? 정말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고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며 잘 대해 주고 싶은 예비신자들의 교리 봉사를 하노라면 그 옛날 내가 떠오른다. 처음 교리를 받으러 성당에 다닐 때, 또 세례를 받고 성당을 처음 다닐 때의 내 눈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로 보였고 모든 면에서 주님을 닮아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들로 보여서 그 누구를 만나도 마음으로 존경심마저 가졌었다. 그래서 성당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좋게 느껴졌고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든 내게 수호천사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낯설고 아는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몇 십 년 성당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도 많고 친근한 사람도 많아졌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성당에 가게 되었고 반가운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나의 눈은 처음 성당에 다닐 때의 그 눈이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우리 성당에 처음 왔거나 매우 낯가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내가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다른 사람들이 느낄 소외감에는 등 돌린 내 모습을 본다. 또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잣대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끼리끼리 어울려 지냄으로써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배척하는 신앙생활이 되어버렸다. 


물론 모든 이와 친분을 나누고 모든 이와 다 잘 지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제는 눈이 가려져 오직 나밖에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버렸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웃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내게 예수님을 느끼거나 바라보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감각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발바닥만 열심히 성당에 다니는 종교인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나에게 번쩍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내 기준이 너무 강해서 예수님의 뜻을 여쭈어볼 겨를도 없었다. 우리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나의 기준에서 예의를 너무도 지키지 않는 사람의 등장에 나는 바리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냥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마치 모든 일의 기준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음으로 끊임없이 단죄하고 판단하면서 내가 주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슬리퍼를 끌고 다니면 예의 없는 무례한 행동이 되었고 만약 어느 수도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면 맨발 수도자의 가난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무리 나 스스로 돌아보며 되돌아서려고 해도 나의 차갑고 이기적이며 교만함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주님의 도움 없이는 판단과 생각과 행동, 그 어느 것 하나, 어쩌면 삶 전체가 교만으로 무너지고 말겠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소외시키고 밀어내고 무관심했던 그 대상이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복음을 살아가려면 다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바리사이의 교만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최종훈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나를 다잡아 본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하지 말까 할 때는 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230625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홈피용).jpg


  1. 미리내 성지에서

    Date2023.08.01 Category시와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Views20 file
    Read More
  2.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그리고 죽음

    Date2023.07.26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27 file
    Read More
  3. 보석과 감초들이 있어 주님의 집 지키는 구암동성당

    Date2023.07.20 Category본당순례 Views260 file
    Read More
  4. 누구나 삶은 처음이다

    Date2023.07.20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58 file
    Read More
  5.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 나의 수필

    Date2023.07.13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43 file
    Read More
  6. 옛 교우촌처럼 여전히 숙연함을 자아내는 장재동성당

    Date2023.07.06 Category본당순례 Views303 file
    Read More
  7. 오른쪽 뺨을 때릴 때

    Date2023.07.06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59 file
    Read More
  8. 간이역

    Date2023.06.29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49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