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7.06 09:39

오른쪽 뺨을 때릴 때

조회 수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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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유경 세실리아 수필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성경구절이 있다. 아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구절.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라.”


이 구절에 내포된 깊은 뜻을 잘 알지 못하니, 바보 같은 행동을 하라는 이 구절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외면하거나 농이나 장난거리로 써먹기도 했다. 때로는 뺨을 때리고, 때로는 뺨을 맞으며 어른이 되었고, 세상도 계절이 바뀌듯 색깔이 변해갔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 학년 한 학년씩 올라가자, 예전에는 몰랐던 초등학생과 학부형들의 세상에 입문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에 대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요즘은 워낙 학교폭력에 대한 예방과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지도할 매뉴얼이 필요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곤 했다.


“친구가 때리면 너도 때려라.”
“뒷일은 엄마가 책임질 테니 맞고 있지만 말고 맞은 만큼 때려라.”


모두는 아니겠지만, 이게 많은 요즘 부모들의 매뉴얼인 것 같다. 학교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니 엄마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는 경우를 허다하게 듣게 되는 것 같았다. 하루는 4학년 아이의 알림장에 선생님의 장문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양쪽이 모두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됩니다. 부모님의 뜻은 똑같이 때려주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지금 너로 인해, 너의 행동, 너의 말로 인해 화가 나고 상처받고 아프다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라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긴 글을 읽고 오로지 내 아이에게 털끝만 한 손해라도 입히지 않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우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당하지는 않을지, 상처받지는 않을지 오로지 ‘내 아이, 내 아이’만 줄곧 머릿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꼭 받은 대로 똑같이 되갚아주지 않는다 해도 정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의아하게 들었던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대라’라는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그 구절은 혹시 이런 뜻은 아니었을까? 오른쪽 뺨을 때리면, 도망가거나 외면하거나, 똑같이 갚아주려고만 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그 가해자에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당당한 태도로 알리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정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닌 아이도 모두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이 또 건강한 어른이 되어 정당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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