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2023.07.13 10:35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 나의 수필

조회 수 43
Extra Form
저자 홍연수 마리아 수필가

어릴 때 지렁이를 보다 호기심에 살짝 손가락을 대봤다.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성인이 되어 바삐 살던 어느 날 지친 일상을 떠나 며칠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침묵 피정에 들어갔다. 고요 속에 머물며 많은 것을 돌아보니 영혼도 맑아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오랜만에 운동장을 걸었다. 그때 눈앞에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손가락을 살짝 대보니 단단한 메마름이 훅 밀려왔다. 이때 묵상이 내 일상을 많이 바꿨다. 나는 봐야 믿고 겪어야 아는 어리석음에 신앙이 늘 부족했다. 그래도 참된 행복과 진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버릴 수 없었다.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쫓아 반복되던 불안이 나의 묵상이며 기도가 되었다. 그렇게 더딘 걸음으로 살다 때론 가쁜 숨도 몰아쉬었다.


분만실에서 조산사로 근무할 때 나는 생명의 신비를 깊이 체험했다. 한 탄생을 보며 놀라운 은총으로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봉사를 통해 오류에 흔들리던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 영혼들이 진리 앞에서 반짝이던 눈빛은 잊을 수 없다. 혼란이 상처와 아픔이 되어 빛을 잃어간다. 애타는 성심을 알기에 난 기도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나는 수필 <참 소중하셔요>에서 존재의 소중함을 썼다. “그래서 나도 입술을 가만히 움직여 소리 내서 조심스럽고 나지막하게 내게 들려주었다. ‘넌 소중하단다.’ ‘넌~ 참 소중하단다.’ ‘넌 참 소중해.’ 꿈결처럼 따스한 음성으로 내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그때. 내 존재를 알고 보내주신 분이 문뜩 떠올랐다.”


또 수필 <두려움>에서는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을 썼다. “마음 편히 말을 하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건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상이다. 그러나 소통이 어려운 이들도 많다. 나도 대화의 일상을 찾기까진 참 오래 걸렸다. 낯선 환경에 긴장되어 신경은 곤두섰다. 먼저 말을 하려니 목이 잠겨 입술을 자꾸 깨물었다.”


이런 글들을 쓰면서 조금씩 나를 깨고 더 가까이 사람에게로 주님에게로 다가가는 작업을 할 기회를 얻었다. 3인3색신앙수필집은 교구 가톨릭문인회에서 5년간 기획하여 발간한 책이다. 나는 마지막 해인 작년에 『더 가까이 오라는』 신앙수필집에 참여하여 열세 편의 수필을 싣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준비만 하고 무력해질 때 성모님께 큰 힘을 얻었다. 놀랍게도 자립 장애인 모임을 통해 지금은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세상에 힘들게 태어난 선천적 장애인들의 맑고 순수한 모습은 하느님의 또 다른 시선인 것 같다. 생명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함께 살며 존재한다. 이 일을 통해서도 주님을 찬미하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참된 신앙 속에 살길 바라신 뜻을 조금씩 알게 됐다. 이젠 모든 일을 성모님께 매 순간 봉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다가서는 기쁨이 더 크다는 신념도 드디어 생겼다.

 

230716 더가까이오라는_앞표지(홈피용).jpg


  1. 나의 단짝 꼬미

    Date2023.08.31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27 file
    Read More
  2. 구한선 타대오의 발걸음

    Date2023.08.31 Category시와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Views19 file
    Read More
  3. 절절 끓는 마음

    Date2023.08.24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37 file
    Read More
  4. 뿌리 깊은 복음의 보금자리 거제성당

    Date2023.08.24 Category본당순례 Views320 file
    Read More
  5. 시심이 신심으로 승화하기까지

    Date2023.08.17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29 file
    Read More
  6. 기쁘고 즐겁게 복음화의 밑거름이 되려는 대방동성당

    Date2023.08.11 Category본당순례 Views332 file
    Read More
  7. 참된 행복

    Date2023.08.11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40 file
    Read More
  8. 어느 일요일 아침

    Date2023.08.01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34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