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8.24 11:26

절절 끓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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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굉주 에스더 소설가

7월은 며칠 빼고는 비가 연일 온다고 걱정했더랍니다. ‘꿉꿉해서 어떻게 사노? 찝찝해서 짜증 난다.’ 등의 불만을 토로했었지요. 저도 빨래를 하지 못하니 옷장을 뒤져 구석에 박혀있던 옷까지 꺼내어 입고 비를 견디었습니다. 어느 지방엔 홍수가 나고 폭우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빗속에도 햇빛이 가끔 비출 때가 있어 저절로 “하느님, 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곤 했지요. 


비가 그치고 나니 새 볕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비 그치고 나오는 볕을 새 볕이라고 부르더군요. 이름은 상큼하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그 새 볕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평상시 매일 하던 일을 하다가, 특별한 모임을 했다가, 시간을 놓칠 수 없어 밭에 나갔다가…. 쨍한 햇볕이 사람을 그냥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계속 더 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있으니까요.


한낮 온도가 30도는 그냥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날들이 계속되는 8월입니다. 불현듯 시편 97편 5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적들을 사르는 주님의 모습을 그린 구절입니다. 지금 읽으면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적이 되어 온 땅이 녹아내리는 상황에 같이 녹아 없어질 것 같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절절 끓어올라 기도로 기쁨을 드려도 모자랄 이 시간에, 기도도 올리기 전부터 몸이 절절 끓어 녹아버리게 생겼습니다. 이런 여름이 계속될 모양입니다. ‘연일 불볕더위, 야외 활동 금지, 외출 자제’라면 코로나 때와 같지 않나요? 코로나라는 병 때문에 꼼짝도 못했는데, 이젠 날씨가 너무 뜨거워 집에서 꼼짝 말라고 합니다. 하느님, 누가 이 죄를 지은 것입니까?


아,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 잘살아 보고자 하여 공장을 짓고, 자동차로 마구마구 달리고, 시원하여지고자 에어컨을 빵빵 틀고 있네요. 제 죄를 몰랐습니다.


휴가 중 게으름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속죄의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매일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부러 한낮 더위가 사방을 달구고 있을 때 성당 마당 성모님 앞으로 갑니다. 저는 그늘진 곳을 찾아 앉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 뙤약볕 아래에 서 계신 성모님 앞에 앉아 기도를 올립니다. 묵주기도 1단을 끝내는 동안 머리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벌린 입으로 땀의 짭짤함을 맛봅니다. ‘헉헉’하는 한숨도 함께입니다. 아주 잠깐 바람이 스쳐 갑니다. 어머나, 너무 시원하네요. 이 땡볕에서 맛보는 시원함이라니…. 제 몸은 살포시 다가오는 바람에 감탄하고 맙니다. 


묵주기도를 끝내고 제 몸과 마음이 모두 하느님의 절절 끓는 사랑을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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