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목부
2025.04.24 10:04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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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석자 헬레나 / 교구 성경교육봉사자

돌아온탕자.jpg

 

내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북도 영변군 약산면이다. 소월과 같은 흙을 밟고 자라서인지 아버지는 글재주가 좋으셨다. 글재주뿐이랴, 아버지는 그림도 잘 그리고, 풍금도 잘 치고, 수학 못하는 딸에게 인수분해도 가르쳐주셨다. 재주가 많은 것보다 곳간에 쌀 많은 게 더 낫다는 어르신들 말처럼, 아버지는 어느 재주를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해 한 우물 파기에 실패한 분이셨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특기는 다름 아닌 무한정 샘솟는 사랑이었다. 늘 따뜻한 친구 같은 사랑으로 자식들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우리 아버지보다 더 좋은 아버지는 없다는 확신을 지금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 꼬맹이일 때부터 별나게 키우고자 하셨고, 한글을 익히자마자 손수 누런색 원고지를 묶어 매일 일기를 쓰게 하셨다. 상급학교에 갈수록 아버지의 기대가 더욱 커지면서 나는 집을 나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 궁리란, 아버지가 그려 놓은 딸의 인생지도에서 탈출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아버지에게 큰 실망과 외로움을 줄 수 있는 반란 같은 것이었다. 내 인생지도는 내 손으로 그려졌다.

 

 

세월이 반백 년이나 흘러 아버지는 딸에게 일상을 의탁해야 하는 약한 존재가 되어 내 집 내가 쓰던 방에서 마지막까지 사셨는데, 부녀관계는 마치 모자관계인냥 역전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병원에 다니셨고, 나와 함께 냉면을 드셨다. 아버지가 떠나시면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돌봐줘서 고마워!’였다. ‘아니예요, 아버지 곁 으로 돌아가게 해 주셔서 제가 더 고마워요.’라고 왜 말씀 못 드렸을까.

 

 

요즘 나는 루카 복음서를 공부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 그림을 묵상하다가 아버지의 표정에 한참 머무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의 표정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거지꼴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온 작은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입에서 ‘휴-’하는 안도가 들리는 듯했다. 이번에는 작은아들을 반기는 아버지가 못마땅해 큰아들이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얼굴에 외로움이 그늘진다. ‘나도 사랑받고 싶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고백한다. 그 아버지는 가이 없는 사랑을 주시는 분이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리라. 아버지에게 어떤 사랑을 드릴 수 있을까. 아버지 집에 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루카 15,31ᄂ), 그러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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