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81
Extra Form
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레위기는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문체가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고대의 법률 용어가 계속 등장하는 까닭에 집중이 힘들 뿐 아니라, 히브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식견이 없이는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2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하느님은 당신이 손수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부터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할 규칙과 법규들을 내리신다. 종교의식에 관한 실수, 육체적 부정, 도덕적 불충들이 매우 세세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사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러니 레위기를 잘 읽는 방법은 밑줄을 긋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밝혀내는 것이겠다. 


레위기는 성성聖性, 즉 ‘거룩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며, 이 거룩함은 겉으로 드러나는 예식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기 19,2), 즉 속사람과 겉사람 모두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과의 관계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각 개인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공동체 전체가 이루어야 하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레위기에서 가르치고 있는 까다로운 법규를 볼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뿐 아니라 시대적으로 가까웠던 예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이 정황이 드러나는 구절이 마태오복음 15장의 본문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다짜고짜 예수를 찾아와 그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다고, 즉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따져 묻는 그 구절이다. 그들이 언급한 ‘조상들의 전통’이란 율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후대에 만들어진 시행세칙으로, 많은 부분 레위기의 법 규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위법이 되는 것은 아니나, 소소하게 드러나는 말과 행동거지를 통해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기준이 되기는 충분했다.


예수는 그들과 심각한 논쟁을 벌이고 심지어 위선자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비판하는데,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떠난 후 예수가 남은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고대의 법전 레위기를 관통하는 메시지, 바로 ‘거룩함’을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말한 ‘거룩함’이란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속사람과 겉사람이 일치하는 삶이다. 이는 그가 입에서 나오는 것, 즉 ‘말’에 대해 강조한 구절에 잘 드러난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15,11)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15,18) 여기서 예수가 사용한 ‘더럽게 하다’는 동사는 그리스어 ‘코이노이κοινοῖ’로, “품위를 떨어뜨리다, 저속하게 만들다”란 뜻을 가진 레위기의 성결법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말하자면 인간을 저질스럽게 하는 것은 속마음으로부터 발산되는 행동과 인격이며, 그것이 표현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이거냐 저거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그가 사용하는 언어다.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말은 약이 되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칼이 되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속사람이 성숙한 이들은 사려 깊은 말로 남을 품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함부로 내뱉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관계 또한 흔들어 댄다. 속사람과 겉사람을 조율하는 삶이 거룩한 삶이며 이를 위해서는 일상의 행실과 언어로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레위기는 그토록 긴 법규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 예수는 겉사람은 올바를지 모르나 속사람이 썩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무리들이 말로 난도질을 하고 떠난 자리에서 레위기가 가르친 바로 그 거룩함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보려 했는데 서론이 길어졌다. “정치적 올바름”, 혹은 ‘피씨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은 말의 표현이나 용어 사용에서 성차별, 인종, 민족, 언어, 종교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운동으로,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이 ‘미투Me Too 운동’ 등을 계기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양한 반응들을 끌어내고 있는데, 공적 영역에서는 미약하나마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겉돌며 거부감을 일으키는 모양새다. 정치적 올바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을 싸잡아 ‘프로불편러’라고 부르며 조롱하거나, 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옮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빠져 시도 때도 없이 트집을 잡는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보았다. 누군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이 ‘더 중요한’ 사회 경제적 문제 해결 운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운동이 공적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상호 비판의 자유를 박탈해 서로 성장할 기회를 억누르고 있다고 묵직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교회에서는 더욱더 자리 잡기 힘든 듯하다. 수긍이 된다. 나 또한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한마디 했다가 괜히 분위기 험악해지고 말한 이와 관계가 틀어질 것이 걱정되어 입을 다물었던 경험이 많다.


이런저런 비판과 우려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단지 정치적 차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룩함’, 즉 하느님을 닮는 삶, 하느님과의 통교를 이루어 가는 나와 공동체의 실천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말을 통해 내뱉는 차별이 당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말 못 할 상처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때로 그 상처는 내성이 되어 스스로의 성장과 도약을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하느님께서도 상처받으실 일이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을 사회적 운동이라기보다 나를 바꾸어 내는 일상의 훈련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이에게 틀렸다고 언질을 주기보다 나 스스로를 바꾸어 내기 위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조심한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혐오 표현이 되지 않을까 조심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나의 눈과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당신의 거룩함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210919 지평과초월(홈피용).jpg

 


  1. “입에서 나오는 것” -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Date2021.09.16 Category신학칼럼 Views281 file
    Read More
  2. 어쭙잖은 나의 기도

    Date2021.09.16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52 file
    Read More
  3. 탄탄한 순교정신을 버팀목으로 새롭게 혁신하는 문산성당

    Date2021.09.09 Category본당순례 Views826 file
    Read More
  4. 나는 왜 성당에 다니는가

    Date2021.09.02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01 file
    Read More
  5. 하느님 나라와 ‘공정 사회’

    Date2021.08.26 Category신학칼럼 Views270 file
    Read More
  6. 누군가를 바라보기-공지영의 「열쇠」

    Date2021.08.12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79 file
    Read More
  7. 실로암 주심에 감사합니다!

    Date2021.08.12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73 file
    Read More
  8. 모닥모닥 사람 향기 진하게 피우는 명서동성당

    Date2021.08.05 Category본당순례 Views729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