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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박재우 베드로 푸리에 신부

교회에 대한 희망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을 지나고 나니 이제 제법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경칩驚蟄은 얼어붙은 대동강 강물도 녹여버릴 정도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절기입니다. 세상은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세상만사 어떤 일이든 순서가 있듯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 뒤에는 봄의 따뜻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경칩驚蟄에는 천지 만물이 차가운 음에서 따뜻한 양의 기운으로 넘어가며, 땅에서는 동면하던 만물이 잠을 털고 일어납니다. 이때 농부는 곧 있을 농사를 대비합니다. 농부는 새로운 씨앗이 봄기운에 싹을 틔우기 위해서 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땅을 맵니다. 왜냐하면 위아래가 완전히 뒤집혀야 땅의 기운이 솟아나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는 죽음을 뛰어넘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인 부활을 준비하면서 겉으로는 차갑지만 따뜻한 신앙의 숨결이 숨어있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 제3주일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가져 봅니다. 농부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고 거친 손으로 밭을 일구어내듯이, 우리도 참다운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늘 속죄와 수난의 신비에 동참하며 내 마음속부터 겉모습까지 완전히 새롭게 일구어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지성소에 다가선 예수님께서는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이내 그 마음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찹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명절(파스카, 주간절, 초막절)이 되면 성전에 올라 “저마다 주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복에 따라, 제 능력껏 주님께 예물 바치는”(신명 16,17) 규정이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냈던 유다인들은 성전을 방문하여 정성껏 하느님께 예물을 바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소박한 마음으로 순례를 왔던 유다인들은 어느덧 이런 과정이 의무화가 되었고, 유다 지도층들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세를 거두고, 성전에 바칠 예물을 판매하는 것도 독점하였으며, 환전 업무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신앙에서 사랑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으며, 하느님께 대한 진지한 예배는 사라지고 오직 형식과 율법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변질되어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인간의 욕심과 무지 때문에 아래부터 위까지 모든 것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분노와 슬픔으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의 거친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의 참다운 사랑을 찾아내기 위해서 한 번쯤은 모든 것을 엎고 일구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와 슬픔 뒤에는 분명 교회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상이지만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부활을 기다리는 신자분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겉으로 드러나는 위용보다는 내면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늘 행복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에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길 기도해 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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