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2.09.15 11:43

“전하지 못한(Untold) 진심”이 전해지도록(Told)

조회 수 74
Extra Form
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220918 4면렛잇고문화이미지(홈피용).jpg

 

전하지 못한 진심(The Truth Untold), 2018. 방탄소년단 
외로움이 가득히 피어있는 이 garden(가든, 정원), 가시투성이, 이 모래성에 난 날 매었어.
너의, … 푸른 꽃을 꺾는 손, 잡고 싶지만, 
내 운명인걸. … 너에게 다가설 수 없으니까. 내겐 불러줄 이름이 없어.
초라한 모습 보여줄 순 없어. 또 가면을 쓰고 널 만나러 가. 
But I know.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걸. 숨어야만 하는걸. 추한 나니까.
난 두려운걸. 초라해. 결국엔 너도 날 또 떠나버릴까. 또 가면을 쓰고 널 만나러 가. 


커다랗고 잘 꾸며진 나만의 정원이 있다면, 그곳은 낙원일까요? 예, 아니오,를 구분하는 것은 정원의 크기와 화려함이 아닙니다. 아무리 멋진 정원이라도 그것이 ‘나만’의 정원이라면, 내가 고립되어 있고 닫혀 있다면, 그 정원은 외로움의 정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누구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고, 그에 따른 권력을 가지는 것, 곧 나의 정원을 키우는 일입니다. 크면 클수록 행복할 줄 알았는데 뚫린 가슴 구멍이 오히려 커집니다. 나만의 정원 그 큰 공간에, ‘나’는 작고 ‘너’는 없어서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지만 생기 없는 황량함, 그 정원은 결국에는 무너질 모래성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모래성을 가지려고 기를 쓰고 달려온 나는, 그 모래성에 스스로를 족쇄 채운 모습입니다. 


큰 정원이 나의 ‘존재감’을 보장해 주리라 여겼습니다. 가진 척, 있는 척, 잘 사는 척했지만 더욱 초라해집니다. 세상 앞에서 힘을 잔뜩 주지만 ‘뻥’입니다. 뻥 뒤 나의 초라함을 들킬까 두렵습니다. 턱은 한없이 앞으로, 어깨는 한없이 위로, 반면 가슴은 한없이 뒤로 숨고 중심은 아래로 주저앉습니다.  


그런 나에게는 본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람들은 하찮게 여깁니다.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중요한 것은 검사님, 의원님, 박사님, 교수님, 사장님, 예쁜님, 잘생긴님, 건물주님, 갑님, 신부님? 같은 ‘내밀만한 명함’이지, 본 이름에는 관심 없고 불러주지도 않습니다. 나에게는 이름이 있지만 이름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이 들이대는 수많은 가시에 상처받은 나는, 내가 숨고 또 나를 돋보이게 할 만한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키워왔습니다. 가시들에 찔려 거칠고 모가 난 나는, 그 모를 더 날카롭게 갈았습니다. 이제는 나도 남부럽지 않은 가시로 중무장했습니다. 나를 방어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키운 가시가 이제는 세상을 위협하고 아무도 가까이 못 오게 합니다.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상처 줄 수밖에 없으며, 닫히고 갇혀서 살 수밖에 없는 나는, 이제 그런 내 모습을 숙명 같은 운명, 영원히 바꿀 수 없는 모습으로 단정해버립니다.  


시작은 누구 때문이라 ‘남 탓’ 하겠지만, 결국 모든 건 지금, 여기,의 ‘내 탓’입니다. “내 탓이오” 하지 못한다면, 그 가시로 덮힌, ‘너’를 차단하는, 그래서 내가 외로운 나만의 정원은 영원히 굳게 닫혀 있을 겁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과시할 정원을 가진 나’라는 가면 쓰기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정원, 그런 가면이라도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 가치가 없고 사람들이 무시하고 혐오할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But I still want you. (하지만 여전히 나는 너를 원해.)  
어쩌면 그때, 조금만, 이만큼만, 용길 내서 너의 앞에 섰더라면, 지금 모든 건 달라졌을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원합니다. 세상을 많이 움켜쥐면 ‘너’도 ‘가질’ 수 있다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재물과 최고의 지위를 가져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너’는, ‘나’가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삐까뻔쩍 무화과잎, 화려한 정원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만약 그런 과대포장으로 가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너’가 아닌 ‘너 가면’을 쓴, 딱 그런 ‘삐까뻔쩍’에 눈먼 누구일 겁니다. 


‘그때’와 ‘만약’을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같은 자세가 필요할 뿐입니다. 한때의 선택이 아닌 매 순간 이어지는 삶의 자세 말입니다.


이 정원에 숨어든 널 봤어.
And I know (나는 알아), 너의 온긴 모두 다 진짜란 걸.
Show you ME. Give you ME (너를 ‘나’에게 보여줘. 너를 ‘나’에게 줘.)
 


‘너’가 내 안에 숨어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나는 나를 충분히 숨길 만큼 영역을 넓히고 중무장을 했건만, ‘너’는 열린 마음으로 닫힌 문을 뚫어내고, 온기로 가시를 녹여 버렸습니다. 보잘것없다 여긴 알몸,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가장 큰 힘인 줄 몰랐습니다. 


가면 쓴 세상 앞에 더 두터운 가면으로 응수했던 나, 하지만 이제 ‘척’하지 않는 진짜 사람을 보고 접한 나는, 그런 ‘너’ 앞에 온전한 ‘나(ME)’를 드러내고 싶습니다. 사람이 어떤지 보고 싶고, 사람과 교감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갈망합니다.  


외로움의 정원에 핀 너를 닮은 꽃 주고 싶었지. 바보 같은 가면을 벗고서.
할 수 있는 건, 정원에, 이 세상에, 
예쁜 너를 닮은 꽃을 피운 다음, 니가 아는 나로 숨 쉬는 것.


지금껏 삶의 목적이라 여기며 쌓아온 것, 그것은 사실 가면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준 것은 외로움입니다. 만드신 그대로 “보시니 좋았다” 하신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여준 ‘너’를 닮게, ‘나’도 이제 ‘나됨’, ‘사람됨’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압니다. 내 안에 들어온 ‘너’는 가면 뒤에 숨은 ‘나’의 본모습을 압니다. 가면을 내 모습이라 여겼던 나는, 인격으로 다가온 너를 통해 비로소 ‘나 인격’을 발견하고 ‘나’로 숨 쉬고자 합니다. 너를 닮은 꽃이란, 너의 모습을 닮았다는 게 아니라, 너를 너 그대로 드러내는 너처럼, 나를 나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나다운 모습, 그것이 내 안에 들어온 너를, 닮은 꽃입니다. 새롭게 피워낸 ‘나 꽃’으로, 세상에서도 ‘나 꽃’으로 살고, 가면 뒤에 숨은 또 다른 이들의 정원에 ‘나 꽃’을 전하고 싶습니다.   


## 난 울고 있어. 사라진, 무너진, 홀로 남겨진 이 모래성에서. 부서진 가면을 바라보면서.
‘But’(그러나) I still want you. ‘And’(그리고) I still want you.  


잔뜩 독이 올라 울음마저 메말랐던 나, 기껏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 내린 허망함의 울음이기도 하지만,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져 버린 안도의 울음이기도 합니다.


초라함에 두려워하면서도(but), 무화과잎 가면을 쓰고 너를 ‘가지길’ 집착했던 ‘나’,
이제, 눈을 뜨고 용기 내어(and), 알몸 인격을 걸고 너를 ‘얻고자’ 소망하는 ‘나’입니다. 


하느님 ‘너’께서 세상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여기를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너’께서는, 성령의 기억으로 교회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 기억을 살아가는 교회, 하느님의 백성, 그 한 명 한 명은 이제, 자신만의 정원에 스스로를 가둔 이들 안에, ‘너’로서, 스며들려 합니다. 

 

220918 렛잇고문화 백그라운드(홈피용).jpg


  1. 제가 죄인입니다

    Date2022.12.14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92 file
    Read More
  2. 반성과 고백-성탄 판공을 앞두고

    Date2022.11.17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84 file
    Read More
  3. 계시 1. 전해지지 못한(Unrevealed) 진실이 전해지도록(Revealed)

    Date2022.10.13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59 file
    Read More
  4. “전하지 못한(Untold) 진심”이 전해지도록(Told)

    Date2022.09.15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74 file
    Read More
  5. 교회의 새로운 미래, 생계형 교회

    Date2022.08.18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80 file
    Read More
  6. 교회의 앞날 걱정은 재정이 아닌 신앙

    Date2022.08.10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28 file
    Read More
  7. 전설, 미신과 신비 사이

    Date2022.08.10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23 file
    Read More
  8. 예언豫言이냐, 예언預言이냐

    Date2022.08.10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26 file
    Read More
  9. 지식이냐, 앎이냐

    Date2022.08.10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25 file
    Read More
  10. 불편함을 끌어안고-고해성사

    Date2022.03.17 Category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Views129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