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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4 16:39

제가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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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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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니겠지요

“수사에 성역은 없다, 경찰의 명운을 건다” 
의지를 표명했던 특별수사본부는 지금까지 90여 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피의자는 17명. 대부분 ‘이태원을 관할’하는 기관들의 책임자, 혹은 실무자급입니다. 특수본의 강제수사는 여전히 ‘용산’이라는 관할에 묶여있는 모양새입니다. 더 ‘윗선’으로 올라가자면 xxx 서울경찰청장, xxx 경찰청장 등도 책임 규명 대상이 되는데, 특수본은 이달 초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아직까지 소환 조사는 없습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도 한 차례 압수수색만 있었을 뿐, 인적 조사는 실무자나 중간 간부급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책임지겠다며 사퇴한 고위 공직자도 아직 전무합니다. 유가족의 심경은 분노에서 참담함으로, 이제는 허탈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조미은/‘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이지한 씨 어머니: “얼마나 더 드러나야 책임질 상황이 생기는 거죠. 어린애들이 웃어요. 부끄럽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 -KBS, 2211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1.22.25


내탓이오

한 달 전부터 아기귀신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 우리 별이에요. 사람들이 본다는 그 귀신, 우리 딸 별이라구요. 우리 별이가, 너무 억울해서, 떠나지 못하는 거예요. 내 딸 그렇게 만든 살인범이 아직 벌을 안 받아서 그래요. 뻔뻔하게, 자기 잘못 아니라는 거짓말만 계속하면서. 
피해자의 이름은 은별, 나이는 열 살, 이 아파트 108동(분양동)에 사는데, 109동(임대동) 사는 친구네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민 차에 치여서 사망했어요. 현재 사고 운전자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요. 이 아파트가 일반 분양 주민과 공공 임대 주민이 함께 살도록 설계된 아파트예요. 아파트를 지어 올리면서 일부 동을, 저소득층 원 주민들한테 공공 임대를 주는 거죠. 여기도, 분양동이랑 임대동 사이 갈등이 있었어요. 양쪽 갈라놓겠다고 분양동에서는 담장 설치하고, 임대동에서는 항의하고.
사장님, 부탁드릴게요. 우리 별이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 안 됩니다. 어차피 별이 원귀는 볼 수 없어요. / 그래도 괜찮아요. 마지막 가는 길에 같이 있게만 해 주세요. / 별이는 보실 수 없어요. 하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 그거면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 별이니? / 엄마! / 별이니? 별아, / 엄마 미안해. /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별이한테 나쁜 짓 한 사람, 꼭 잡아줄게. / 나, 엄마한테 영어학원 간다고 거짓말하고, 유리랑 놀았어.


(우리 별이 내년이면 4학년 올라가지. 그런데 계속 축구나 하면서 놀면, 다른 애들한테 뒤처져. / 유리네 엄마는, 축구 마음대로 해도 된댔어. 그래서 유리가 우리 반에서 축구 제일 잘해. / 그 집은 그래서 임대동 살잖아. / 그게 뭐? / 임대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데야. 별이도,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그런데 살아야 돼. 그러고 싶어? 잘 모르겠으면,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다 별이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알겠지? 
별이 엄마, 잘 만났네. 지금 담장 공사하는데, 임대동 주민들이 몰려와서 난리 치고 있다네, 같이 좀 가지. / 그래요? 그럼 같이 가야지. 별이 너, 학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 
늦었어, 늦었어, 엄마한테 죽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늦었는데, 빨리 가야 하는데…)


차에 치인 게 아니라, 담에서? 내가 만든, 그, 그 담에서? / 엄마 미안. 엄마가, 위험한 짓 하지 말라 그랬는데. 진짜 그 담, 넘을 수 있을 줄 알았어. / 아냐, 아냐, 별아, 별이 잘못 아니야. 엄마가 잘못한 거야. 엄마가 그 담을 만들어서, 너를… 내 딸을, 내가, 내가, 죽였어. 어떡해. 별아, 별아, 너무 미안해. -드라마, 2021년, 대박부동산, 8화 
내가, 우리 딸 얘기 제대로 해 준 적 없제? 우리 봄이, 원해서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한텐 유일한 가족이었어. 힘들었지만, 정말 잘 키우고 싶었어. (봄아, 엄마 갔다 올게, 미안하다… 봄아, 엄마 왔다. 봄아, 아이고, 우리 애가 왜 이라노?) 나는 우리 봄이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내가 봄이를 죽였다고 했어. (처음 여관에 들어갈 때부터 생각한 거가? 왜 죽였노?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 내 인생 발목 잡을까 봐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도, 봄이를 지키지 못한 내 자신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어. (교도소에서 나온 후) 봄이를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네 엄마가 찾아왔어. (누구세요? / 네가 아기를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아는 사람?) 니 엄마는 봄이만 보내준 게 아니라, 내 삶도 구원해 준 거였어. -14화 


댤걀귀, 정말 퇴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 한 가지 뿐이야. 달걀귀가 빙의된 사람의 몸에 이름 없는 귀침을 찔러서 죽이는 방법… / 달걀귀가 빙의된 사람이라면, 영매? / 달걀귀는, 퇴마사의 몸에도 빙의가 가능해. / 그럼 사장님이랑, 범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 그냥 두면, 사람들을 계속 죽일 거야. / 달걀귀가 영원히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건 아니야. 원한이 풀릴 만큼 죽이고 나면 스스로 소멸해. / 얼마나 죽어야 원한이 없어지는데요? 백 명? 이백 명? / 천 명이면, 천 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한 명을 희생해도 되는 걸까? 
달걀귀 넌 절대 여길 나갈 수 없어. 절대. … 이거였어? 그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던 거야. 엄마는, 끔찍한 재앙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거야. 퇴마사니까. -15화

 


별이 엄마는, 가난을 혐오하는, 그리고 자녀에게 공부만 하라 하고,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하는, 요즘 많은 엄마들과 다르지 않은 엄마였습니다. 또한 엄마이기에 딸을 너무 사랑하는, 우리의 흔한 엄마였습니다. 딸이 사고로 죽었다고 믿고 딸을 죽게 한 범인을 기필코 벌받게 만들어 딸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담을 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진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딸이 가난한 집 아이와는 친구 되지 못하게 담 친 자신이 딸을 죽게 한 것이라며 절규합니다. 


봄이 엄마는, 학생 때 책임지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았지만, 혼자서라도 최선을 다해 잘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온 후 죽어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경찰은 당연한 듯 엄마가 봄이를 죽였다고 단정해버렸습니다. 봄이 엄마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고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도 몰랐지만, 그저 엄마인 자신이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내 탓’이라고 하며 스스로 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퇴마사 홍지아의 엄마도 퇴마사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 떠돌고 있는 원귀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의 아픈 기억을 온전히 자신이 받아들여, 영혼을 평화롭게 떠나보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퇴마할 수 없는 달걀귀의 재앙을 막기 위해, 그 모든 분노와 아픔을 자신이 지고, 스스로를 희생시켰습니다. 그들 죽음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구해야 하는 책임, 그들의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켜야 할 책임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택한 겁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책임질 게 없는 게 아니라, 책임질 능력이 없고 책임질 마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책임질 수 없습니다. 애초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이는 벌 안 받을 궁리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법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검사, 정치권력, 돈)을 찾고, 죄를 지어도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온갖편법, 촉법소년)을 찾습니다. 설사 벌을 받는다 해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빠져나가지 못한 것에 분하다고 여길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죄가 있어도 ‘저는 아니겠지요’ 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죄가 없어도 ‘내 탓이오’ 합니다. 이런 죄스런 사회를 만든 죄, 도와주지 못한 죄, 지켜주지 못한 죄, 구해주지 못한 죄에 대해 ‘내 탓’이라 여깁니다. 


엄마와 퇴마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죄는 ‘사랑한 죄’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아픔 앞에서 ‘사랑하는 죄’ 때문에 ‘내 탓이오’ 합니다.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님의 원고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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