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2.10.13 13:19

계시 1. 전해지지 못한(Unrevealed) 진실이 전해지도록(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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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221016 렛잇비문화 백그라운드(홈피용).jpg

 

아버지는 강조하시곤 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다.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부는 바람도 공짜, 하늘에 뜬 흰 구름도 공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도 공짜, 눈부신 햇살도 공짜였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의 자태도 공짜, 그 꽃이 풍기는 향기도 공짜였다. 우연히 만난 아이의 환한 웃음도 공짜,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도 공짜였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2015, 송정림, 에세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가톨릭교회 교리서, 51번) 그렇게 당신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인간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서 당신께 응답하고, 당신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하십니다.(52번) 하느님은 사랑이시며(1요한 4,8.16) 그 사랑은 으뜸가는 선물로써 다른 모든 선물을 포함합니다.(733번) 당신과 당신 뜻을 ‘알게’ 하시는 계시 또한 ‘선물’입니다.(99, 2059번)


조건 없이 무상으로 준다고 해서, 곧 ‘공짜’라고 해서 다 선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잊은 줄 알았지? 생일 축하해. …뭐해? 빨리 풀어봐. …왜? 맘에 안 들어? / …이번 어린이날… / …뭐, 다른 거, 원하는 거 있음 말해봐. / 부산… 엄마한테 가고 싶어요. 내일. / 아빠 시간 나면 다음에… / 아뇨, 내일요. 맨날 다음이라고만 하고, 또 거짓말이잖아요. 아빠 시간 안 뺏을게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부산행〉. 2016, 연상호 감독, 영화


증권사 펀드 매니저로 돈만 보고 살아온 아버지는 딸의 생일날 밤늦게 집에 들어와 비싼 선물을 건네지만 어린이날 준 것과 똑같은 선물을 또 사와 버렸습니다.
1. 주는 이가 성의 없이 선물이랍시고 줄 때,
2. 주는 이가, 받는 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주지 않고 제 생각대로만 줄 때,


풍요와 무료라는 두 가지 개념은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한다. / 오직 희귀성만이 이익을 보장한다! 그러니 희귀성을 만들어내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특히 자연이 선사한 무상성이라면 질색이다. 이들은 자연의 무상성을 일종의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한다. -『탐욕의 시대』 2008, 장 지글러 


3. 받는 이가 선물을 받기 싫어하거나 거부할 때,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마태 13,13.15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마르 7,18. 8,18. 9,32 


4. 받는 이가 선물의 가치를 못 알아보고 못 누릴 때,


이런 모든 경우, 선물은, 선물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 ‘예’를 드는 겁니다. - 미사만 안 빠지고 해 ‘주면’ 된다고 여기고 ‘큰소리’치는 사제들, 신자나 자녀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보다 자기 원의를 우선으로 하며 ‘큰소리’치는 사제들이나 부모들, 오로지 표를 얻고 권력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척’만 하며 ‘큰소리’치는 정치가들의 경우가 1,2번일 겁니다. 그런 경우, 선물을 준다면서, 책무를 다한다면서, 큰소리치면 권위 있는 줄 착각하는 사제, 부모, 정치가들보다, 오히려 받는 이들이, 주는 이들을 배려(?)해 적당히 맞춰줘야 하는 ‘고충’을 겪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은 1,2번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받는 이들의 요구 그 이상으로 “좋은 것을 더 많이”(마태 7,11), “성령을 더 잘”(루카 11,13) 주시기 때문입니다. 받는 이의 입장에서, 비신앙인은 3번, 신앙인의 경우는 4번이 될 수 있습니다.  

 
계시로써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 이러한 초대에 합당한 응답이 바로 ‘신앙’이다.(교리서, 142번)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66번) 
‘신앙’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동의를 드리는 것이다.(143번)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태 16,17)라고 밝히신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먼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도와주셔야 하고, 또한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로 회개시키시며,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153번) 


계시 종교의 맹점이 있습니다.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셨다니 온전한 진리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교회가 우월감, 교만함, 의존함, 안주함에 머물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진리는 결코 세상의 것처럼 ‘지식’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분께서 건네시는 초자연적 진리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동의하며 성령 안에 온전히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머물고자 할 때, 곧 ‘신앙’으로만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진리는 “개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것”, “돼지들 앞”의 “진주”(마태 7,6)일 뿐입니다.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 근래 보기 드문 일 /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 맨발 몇이 /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 햇빛을 /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 허천난 듯 먹고 마셔 댔지만 /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허락된 과식〉. 나희덕, 시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마태 14,20


수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기적 이야기는 그분이 일으키신 ‘놀라운 일’이 아닌, 하느님이 선물로써 주시는 은총의 ‘무상성’과 ‘풍요로움’을 보여줍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하느님은 ‘한없이’, ‘공짜’로 주십니다. 그것을 누리려면, 얻기 힘든 귀한 것들이 가진 ‘희소가치’가 아닌, 이미 풍요롭게 주어진 소중한 것의 ‘존재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새로운 정신, 곧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살도록 허락된 하느님 나라, 그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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