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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13:23

반성과 고백-성탄 판공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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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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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때는 매우 번성했던 벌의 왕국이 있었다. 왕과 귀족은 막대한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호화로운 궁전과 별장을 짓고 멋진 의복을 만들어 입었으며 매일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파티를 열었다.
이 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이용하여 외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를 늘려 나갔다. 그런데 많은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동안 대부분의 장수들은 후방에 굴을 파고 그 속에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개선할 때에는 이들이 항상 선두에 서서 영웅처럼 행동했고 따라서 훈장은 언제나 그들의 차지였다. 


재판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려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판사와 변호사에게 갖다 바친 뇌물에 따라 시비가 결정되었다. 상품 주문은 항상 넘쳐서 아래로까지 일이 끊이지 않아 모두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이처럼 악이 횡행하고 있는 벌의 왕국에 어느 날 승려가 나타나서는 모두가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으며 깨끗하고 바르게 살 것을 맹세했다. 왕후와 귀족은 궁전과 호화로운 의복을 모두 팔아 빚을 갚았으며, 1년 내내 단 한 벌의 옷만 입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 군대가 해산하고 극장도 폐쇄되었으며 모두가 정직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으므로 재판도 불필요해졌다. 


이렇게 되자 파티와 연극도 사라져 호화로운 의상을 만들던 재봉사와 요리사, 목공, 석공, 조각가, 배우 등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심지어는 건물에 사는 것도 사치라 하여 벌들은 모두 나무 구멍으로 이사를 갔으며 하나같이 깨끗하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곳의 벌들이 대거 공격해 와서 착한 벌들을 모조리 잡아가 노예로 부렸다. 착한 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전전긍긍하며 매일매일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꿀벌의 우화(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더 맨더빌


1714년 출판된 책의 1923년 개정판이 2010년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보다 한 세대 앞서 이미 개인의 이기심과 이익 추구 행위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금욕과 이타심은 위선이고, 욕심과 악덕이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라며 그리스도교 윤리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최윤재 교수는 한비자를 연구하다가 맨더빌과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합니다. 

 

맨더빌과 한비자, 나아가 마키아벨리까지 공유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관, 바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토대로 맨더빌은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의 악성을 마음껏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권력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욕심에만 충실한 인간들을 지배하려면 힘과 법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탈출 20,1-2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을 나에게 불러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나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그들의 자손들도 가르치게 하겠다.’ -신명 4,1.10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는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여기서 맺은 계약과 그분이 주신 법은 그분과 그분 뜻을 드러냅니다. 그 법이, 단지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며, 그 법을 통해 백성이 하느님을 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에게서 보듯, 세상 군주는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백성이 모르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당신 뜻을 백성이 알게 하십니다. 그 법은 하느님 은총에 대한 백성의 응답이며, 그렇기에 백성은 법의 수혜자입니다. 법은 의무가 아닌, 백성으로서 합당히 실천해야 할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해 당신이 백성을 해방시키시는 분, 살리시는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백성화’ 되도록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집트 탈출로 외적 해방을 경험한 백성은, 광야의 순례적 삶을 통해 내적 해방을 구현해 나갑니다. 법은 이 과정에서 지침이 되며, 그 궁극 목적은 죄로 인한 죽음의 상태에 있는 백성을 살리는 것이고, 이는 신약의 법의 목적과도 일치합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구속처럼 보이지만, 세상 법이 죄성의 인간을 묶어두기 위한 억압의 틀이라면, 하느님의 법은 하느님 닮은 인간 구현의 길을 위한 기본 토대가 됩니다. 자유 없이 복종하던 노예를, 스스로 순종하고 섬길 줄 아는 자유의 백성으로 이끕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19,16-22


성사 보라는 데 성사 볼거리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요. 반면, 본당에서 나눠준 십계명 양심성찰 표를 따라 성찰해 보면 죄 아닌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도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사는 게 죄인 것 같습니다. 


잘못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반성’이라 하고, 잘못의 ‘현실’에 대한 성찰을 ‘고백’이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에 기반한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에 기우는 경향으로 인해 실제적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젊은이가 “다 지켜왔습니다”라고 하는 건 반성 없는 고백을 했기 때문 -죄지은 게 없어 고백할 게 없다고- 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이라고 하시자 비로소, 자신의 내적 상황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단지 재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눈감고 보지 않으려던 죄의 가능성, 자신 안에 늘 있던 죄의 성향, ‘사람’이 되기 위해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뿌리를, 보려고도, 고치려고도 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고해소에 들어가, 미사 빠진 것부터 시작해서 피상적인 죄만을 편하게(?) 고한다면 거기에는 반성이 빠져 있는 겁니다. 반면, 현실적으로 죄를 범했음을 인지하면서도, 인간이 다 그렇지 뭐, 나만 특별한가, 하며 고하지 않는다면, 반성을 빙자해 고백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반성하고 고백하는 것은 아프고 힘든 일입니다. 나 자신과의 치열한 씨름이 요청됩니다. 고뇌하지 않는 것, 변명하는 것은 도망입니다. 


고뇌해야 치유가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할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고해하는 이도, 고해듣는 이도, 힘들어야 합니다. 편하게, 행사 치르는 게 아닙니다.)


BBC는 “x xx가 사전 안전 관리가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xx당국은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사고로 치부하고 있다”며 xx가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라고 비판했습니다. 외신들은 참사가 벌어지기 전 접수됐던 112 신고 내용을 전하며, “첫 신고 때부터 상황의 심각성은 명백했다”고 꼬집었습니다. - MBC, 221102


(xx랜드 사태에,) “본의가 아닌데 이런 식으로 흘러와 미안하다”


(외신회견 ‘말장난’ 논란에,) “경위와 무관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 사과드린다.”


누구에게나 있는 뿌리 깊은 죄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회개의 차원으로 발전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는 차원으로 발전된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삶의 토양이 척박해진다.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사회 규범을 의식하는 책임적 허물 의식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래디컬한 개혁성을 잃지 않기 위해 종교적인 죄의식이 필요하다. 전자는 도덕의 문제요, 후자는 신앙의 문제다. 신앙은 도덕을 폐하지 않고 완성한다. -양명수, 옮긴이의 서론 『악의 상징』, 폴 리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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