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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종두 요한 신부/ 교구 이주사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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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센터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공단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 기계처럼 일하거나 농지와 양식장 등에서 단순 육체노동을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집합명사에 자신의 이름이 가리어진 이분들 중에는 자국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했던 프로페셔널도 많다.


의료인(의사, 간호사), 금융업계 전문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들도 있다.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든, 현재는 대한민국 공장에서 “야!” “새끼야!”라고 불리는 이름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요즘 나의 사목 중에 하나는 집합명사인 ‘외국인 노동자’로서가 아닌, 전인격적 존재이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한 분 한 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하듯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미사 후나 가정 방문 중에, 이름이 감추어진 꽃들의 뿌리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 오기 전 어떤 일을 하셨어요?” 과거를 묻는 질문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러고는 잃어버렸던 자아를 다시 찾은 듯, 과거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그렇게 과거의 본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현재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에 이른다. 그리고는 단절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한숨을 뿜어내며 멋쩍어한다.


어떤 한 여인은 본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나름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살다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에 건너올 때, 한국의 로맨틱 드라마에서처럼 세련되고 화려한 한국의 커리어 우먼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꿈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시골마을로 시집오게 된 20대의 꿈 많았던 여인은 시댁의 농사일에 투입되어, 피부는 어느새 검게 그을리고 그동안 애써 가꾸어오던 하얀색 우유 빛깔 피부는 포기해야 했다. 숱한 날을 이불속에서 신세 한탄을 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단다. 운전석에 앉아보지 못했던 도심의 수줍고 가련한 20대의 여인은 8년 동안 무면허로 트랙터까지 몰며 농사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씩씩한 한국 시골의 아낙네가 되어있었다. K-드라마의 세련된 주인공을 꿈꾸다 전원일기 속의 조연이 되었던 것이다.


주변의 영어학원의 선생님으로 살 기회가 있었지만, 시댁 어른들이 허락을 하지 않아 집과 밭만을 오가며 그렇게 청춘을 다 보냈던 것이다. 급기야 고부간의 갈등, 남편과 의사소통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시골을 벗어나 자녀들과 함께 도시에서 영어선생님으로 한국에서의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트랙터를 몰고, 살림을 살고, 육아를 하고 이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이 사회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름 모를 이방인으로 서 있다.


상실된 이름 뒤에는 개인의 경력단절뿐 아니라 가족과의 단절, 문화와의 단절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함께 있다. 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그늘에 서있는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밝은 빛 앞으로 나오도록 초대하고 싶다. 죄지은 아담에게도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셨던 하느님이시지 않은가! 죄인도 아니지만, 오늘도 감추어져 있는 꽃들의 향기를 맡으러 길을 나선다. “어디에 있나요? 밝고 평화로운 하느님 나라로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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