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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종두 요한 신부/ 교구 이주사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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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이주해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에 나는 온전히 상상 속에서 스스로 명명한 ‘성 바오로 다민족 성당’의 구유에서 태어나실 예수님을 고대해 본다. 


‘상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언제 이것이 실현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부가 성당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는 상상을 한다고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실하고 간절한 상상이다.


가톨릭교회는 단순히 자선의 차원에서 불쌍하게(?) 보여지는 이주민들을 위한 보편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이주민을 바라보지 않는다. 하느님 자신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자녀들 모두를 살리시기 위하여 ‘이주’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살기 위해서 ‘이주’한 세상 곳곳의 이주민들의 적극적인 만남을 위해 ‘이주사목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이주민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구원역사 속에서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약속된 땅으로 이주하여 살기를 원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공간을 우리교구에서는 공식적으로 ‘천주교 마산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창원이주민센터’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창원이주민센터는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 이주배경 결혼여성, 이주배경 자녀들의 사회통합을 위한 공간으로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사적기능을 하는 공간인 것이다. 비영리단체로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되어 있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창원종합사회복지관과 건물을 공유하며 지내는 우리 센터는 법적으로 ‘종교적’‘성사적’기능이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매 주일 봉헌하는 미사도 ‘창원종합복지관 대강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서 거행된다. 성전이 아니라 ‘감실’도 모시지 못한다. 이 대강당의 수용인원은 접이식 의자로 놓아도 최대 100명 정도이다. 아직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주민들의 ‘임시캠프’의 모양새로 성사가 거행된다.


그래서, 이주민센터장인 신부의 고대가 비영리단체인 센터뿐만 아니라 공적으로 인준된 ‘성당’의 설립이다. ‘좋은 소식: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먼 길을 이주하며 다니셨던 바오로 사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다민족들의 다양한 언어로 미사가 거행되는 성전이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이 ‘성 바오로 다민족 성당’이라는 가상의 속인주의 교회가 나의 머릿속에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집회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주민들의 성사생활이 안정될 수 있는 교회법적인 장치도 요구된다. 지역 교회의 교적에 등록되지 않은 이주민들의 세례, 견진, 혼인성사 등의 성사권을 보장해 줄 사목권이 주어진 성당이 필요한 것이다. 현행, 한국교회의 양업 시스템에서 영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가 지원되지 않아 이들의 이름이 한국어로만 기입되어, 증명서가 발급 되어도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본인 확인이 되지 않아 견진 및 혼인성사를 하게 될 때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양업 시스템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나 있는 이주민들의 성사생활을 관리해 줄 수 있는 행정적 기능을 가질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없더라도 가상(?)의 성당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깨어 있어라! 그때와 시간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올 한 해 이주민센터에서 일어난 몇몇의 사건들로 구체화되면서 나의 ‘성 바오로 다민족 성당’의 꿈은 여전히 유효한,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지난 4월에 연재된 ‘신앙심 깊은 동티모르 친구와 돈만 생각하는 사제’라는 제목의 칼럼 주인공이 커다란 수술을 마치고 치료가 종결되어 본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금의환향을 꿈꾸고 대한민국 땅을 밟은지 10여 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금의환향이 아니라 하반신마비라는 장애에 휠체어를 타고 빈손으로 가족들 품으로 가게 된다. 한 줌의 재가 되어 가족에게 전달되었을 수도 있었던 2여 년간의 어마어마한 고통의 대림 시기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기다림’으로 자신이 원한 모습은 아니지만, 10여 년 동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성장해 있을 아이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고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그에게는 적어도 10년간의 어둠의 ‘대림’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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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달 연재된 ‘띄어쓰기 잘 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의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기형 심장을 교정하는데 16년이라는 대림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 고통스러운 16년의 대림 기간에 ‘희망을 잃지 않은 기다림’은 그 소녀에게 올해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로 보상된다. 16년의 기다림 끝에 4시간 남짓의 수술이 성탄의 기쁨을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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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과 16년의 대림이 기쁜 성탄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나의 상상 속의 ‘성 바오로 다민족 성당’도 ‘희망을 잃지 않은 기다림’이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의 ‘희망을 잃지 않은 기다림’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의 원고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윤종두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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