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심기도
2024.04.25 09:49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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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행도 가롤로 신부/ 월영본당 주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 23,26)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치(설거지) 상으로는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잔의 속뿐만 아니라 겉까지도 깨끗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잔 속, 즉 우리의 내면(무의식)을 정화하면 잔의 겉, 즉 행동이나 말은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뜻으로 뒤집어 생각하면 내면을 정화하지 않으면 행동이나 말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39-40)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성격이 매우 급하고 직선적이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결코 참을 수 없는 저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성인들이나 하실 수 있는 그런 말씀으로 들려왔고 예수님이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려니 하였습니다. 


그런데 향심기도를 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나 친척 중 누군가가 저에게 하대 말을 했을 때 기도하기 전에는 “이 양반(놈) 봐라!”라는 생각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불쑥 올라왔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교우님들 중 저에게 반감을 보이고 미사에 나오지 않거나 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때, 찾아가서 용서를 청하거나 전화로 사과드리기도 하고 그분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관상기도를 통해 내면의 정화가 일어나면 켜켜이 쌓여 있던 우리의 거짓자아가 치유되면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참자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잃어버리고 있던 본래의 ‘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저의 눈빛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평소에도 날카롭고 강렬한 편이지만 열을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레이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언젠가 교구청 앞 건널목에서 시비가 붙었던 그 사람이 “저 새끼 눈깔 봐라!”라고 했던 그런 눈빛인데 이번에 부임한 월영본당 교우님이 “참 인자해 보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지난 22년간의 향심기도가 저의 눈빛마저 변화시킨 것이지요. 


저의 내면이 정화되면 제 말이나 행동뿐만 아니라 모습까지도 변화되어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본래의 모습, 참 좋은 모습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저를 조금씩 조금씩 좋은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근원적인 힘은 관상기도(향심기도)입니다. 


어떤 곳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하고 말합니다.


이때 ‘기도’에 사용된 단어가 아람어 ‘shela’(샬루)인데, ‘자신을 열어 놓는 것’ ‘하느님의 현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우리가 관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관상기도는 예수님 시대 때부터 보편적으로 행해졌지만 15~17세기를 거치면서 신학의 발전과 문예부흥, 인간 이성의 강조 등등 여러 가지 시대적, 교회 내적 상황과 맞물려 정신 기도는 생각을 주로 하는 추리적 묵상, 의지의 행위를 중점적으로 하는 정감적 기도, 하느님에게서 주입된 은총이 우세한 관상으로 구분됩니다. 추리적 묵상과 정감적 기도와 관상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기도 속에서 발견되는 다른 행위가 아니라, 각각 다른 목표와 방법과 목적을 갖는 별개의 기도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과정이 완전히 분리된 개별 단위로 나눠지면서 관상이 극소수에게 제한된 비상한 은총이라는 잘못된 개념이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관상은 대중(일반 신자들)을 떠나 봉쇄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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