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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몽실언니』, 『강아지똥』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많은 작품 중 『오두막 할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짧지만 행복한 이야기이다. 


산밭 외딴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는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두고 교회 식구 수에 맞추어 경단떡 스물한 개를 빚는다. 그리고 그동안 아껴아껴 모아둔 헌금 8천 원을 봉투에 넣고는 잠자리에 든다. 
막 잠이 들려는데 한 젊은이가 찾아와 배가 고프니 먹을 것 좀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얼른 떡 세 개를 주었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한 늙은 길손이 또 찾아와 배도 고프고 여비도 떨어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다시 떡 세 개와 헌금봉투 속 돈 5천 원을 꺼내 주었다.

 

그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한 어린아이가 찾아와서는 날이 어두워져서 길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떡 다섯 개를 먹이고 따뜻한 이불을 덮어 재워 주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어느새 일어나 가 버렸고 할머니는 남은 떡 열 개와 헌금 3천 원을 들고 교회로 갔다. 신자들과 떡 반쪽씩 나눠 먹으며 즐거운 감사절을 보내고 돌아온 할머니는 그날 밤 꿈을 꾼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젊은이와 늙은 길손과 어린아이를 만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 사람은 한 사람이 되어 인자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 저를 자세히 보세요. 제가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어요?” 


그분은 예수님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할머니의 손에는 간밤 예수님의 따뜻한 손길이 남아 있었다.


오두막의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불쌍한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하느님께 드릴 귀한 떡인데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주었다. 그들에게 주는 것은 곧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고, 그들을 귀히 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까마득한 저 하늘 꼭대기 어딘가에 계시는 게 아니라 내 주위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신다. 오가며 늘 마주치는 동네 사람, 어두운 골방에서 추위에 떠는 이, 몸이 아픈 어린이, 그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오두막도 외롭지 않고 따뜻할 것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권정생은 평생 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검소하고 겸손한 그의 삶은 오두막 할머니처럼 늘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어떤 이는 선생을 이 땅 ‘마지막 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정호경 신부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세상 곳곳의 아이들에게 향하는 권정생 작가의 사랑처럼, 이번에 맞는 겨울이 모두에게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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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 교수님의 원고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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