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1.05 11:36

지란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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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진희 세레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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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친구 사이를 수어지교, 난초같이 귀하고 향기로운 친구를 금란지교, 지란지교라고 한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할 親 옛 舊로 사전적 용어는 친하게 예전부터 사귄 사람을 뜻한다. 나에게 수어지교, 지란지교는 있을까?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눈만 뜨면 나가던 직장을 퇴임하고 보니, 갑자기 공허하고 매사 무기력한 것이 나 혼자만 덩그러니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삼가고 주변의 만남에 소원한 것도 있지만 하루 종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공황상태가 온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학교 동창회는 물론 친구들과의 소소한 모임이라곤 없으니 그야말로 40여 년간 집과 직장만을 오간 것이다. 


외롭고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친구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우연히 전화만 오가던 코흘리개 친구가 생각났다. 우린 적어도 그동안의 공백기를 허물고 어릴 적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는 그 친구 집에서 밤마다 연속극을 보던 일… 등 그 가족들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때 참 미안했다고 “밥값은 내가 낼게” 하면서 우린 웃었다. 치매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친구 어머니를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여자 친구들도 어렴풋한데 남자 동창들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호기심 반, 기대 반의 묘한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아, 어릴 적 우리 반 했던 그 아이, 공부 잘하던 그 학생, 생가지를 맛있게 먹던 남학생, 고무줄놀이하는 여학생들에게 와서 날쌔게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던 동네에 사는 개구쟁이, 시장에 쌀집 아들… 모두 몰라보게 변해서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리며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깨에 진 짐도 덜어내고 머리가 희끗한 나이의 아저씨들은 50년이 훌쩍 지난 시간을 돌려놓으며 웃고 떠들고 모두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여고 동창 모임에서 또 연락이 왔다 그들의 단체 방에 나를 초대한 것이다. 주로 서울·경기 지역의 친구들로 여행경비를 모으는 중이란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나를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며 함께하기로 했다. 풋풋했던 여고 때의 친구들 이름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나의 친구가 있었다. 성당에서, 직장에서 함께했던 보고 싶은 언니 친구, 그리운 엄마 친구(가끔 대모를 ‘엄마’라 부름)다. 그들은 어쩐지 남과 다르게 느껴진다. 훌쩍 떠나고 싶은 어느 날, 나의 애마는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아늑한 고향 같고 바다를 떠올리면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그 바다에 가면 언니 친구들이 있다. 성령의 힘으로 우린 연결되어 있었고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사람들이다. 하느님을 믿는 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위안이 된다.  


새해에는 친구를 위해, 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운 날이 많아지기를 소망하면서 그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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