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2.22 09:41

우울한 성탄절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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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시탁 스테파노 시인

이 나라 청춘이 질식당한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연말이다. 유가족들은 이 겨울 이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눈에 넣고 오백 번을 굴려도 아프지 않을 새끼를 잃고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살까. 이 세상에 그 어떤 고통이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과 같을까. 그들은 우리의 딸들이요 아들이며 친척이고 이웃이었다.


아빠에게 신장을 이식해 주고 생일상을 차려주고 외출한 딸이었고 갓 제대한 군인이었다. 첫 등교로 가르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만나보지도 못한 예비 교사였으며 한 번도 부모 속을 태우지 않고 공부 잘한 외아들이었다. 그 꽃송이 속에는 아직 봉오리로 맺힌 고교생도 있었고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도 있었다. 


자식이 오디션 출신 배우인 부모는 마술로라도 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통곡을 했고 백발의 아버지는 너를 이리 허망하게 보낼 수 없다고 관을 잡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혼절했었다. 동시에 1억 번을 찔린 것 같다고 말도 잇지 못하던 외국인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가슴을 후벼 판다. 다리가 무너진 것도 비행기가 추락한 것도 배가 전복된 것도 아니었다. 태풍이나 홍수나 지진 등 천재지변도 아니었고 괴물 같은 코로나가 도진 것도 대형화재나 교통사고도 아니었다. 심지어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도 아니었다. 남의 나라 문화에 변질된 핼러윈 데이에 피 끓는 청춘들이 이태원에 몰리면서 일어난 대형 참사였다. 이 나라 치안은 미리 사실을 감지하고 파악했음에도 대책에 부실했고 사고가 나기 전 112에 수십 번의 신고를 했음에도 조치에도 미흡했다.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인재였다. 그 참사를 지금도 정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위정자들은 또 무엇인가. 할 수만 있다면 모조리 비행기에 태워 태평양에 쏟아버리고 싶다. 거기서도 혀는 동동 떠서 네 탓이오 네 탓이오를 거듭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지하의 김구 선생이 벌떡 일어나 앉을 일이다. 얼마든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그 원통함이 더하다. 


이 나라의 치안 책임자들과 그들에게 국민의 안정과 생명을 맡긴 어리석은 국민들이 합작해서 저지른 총체적 살인이다. 그러니 무슨 염치로 꽃을 들고 그 곱디고운 청춘들 앞에 버젓이 설 수 있는가. 이제 또다시 세월호 리본 같은 거나 만들어 달고 다니면 면책되는가. 오 주님! 주님께서도 방관만 할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꽃샘추위에 봉오리인 채 떨어지는 목련도 억울한데 하물며 우리의 청춘들이 아닙니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셔서 잘못 데려왔다면 데려온 놈의 귀때기를 후려치시고 다시 보내 바로 잡으셨어야지요, 이 겨울이 아무리 혹독한들 유가족들의 볼에 흐르는 피눈물이 얼겠습니까. 


가슴 중앙을 그대로 관통하며 출렁이는 강물 소리가 끊기겠습니까. 주님의 자녀로서도 저들에게 어떠한 위로도 도움도 될 수 없는 무능함에 무릎을 꿉니다. 성탄절을 맞아도 채 마르지 않는 눈물 어찌하리까. 이 해가 지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게 주님께서 지켜주소서. 우울한 성탄절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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