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파주기행』(2023.8 황금알)은 아내의 수술에 관련된 시집 제명이다. 아내가 서울 S병원의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30일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딸과 사위가 사는 파주시 운정 신도시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네도 그곳에 오래 산 것이 아니라 딸 하나 키우고 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고 난 뒤, 모처럼 근교 생활을 하기 위해 그곳에 갓 이사한 터여서 두서가 없었다.
그때 쓴 작품은 6편으로 ‘문산역’ ‘출판단지’ ‘사임당의 묘’ ‘프로방스 마을’ ‘운정신도시’ ‘반구정’ 등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이 시편들은 신앙시가 아니다. 그러나 한 달간의 기다림과 초조함이 내재한 시편들이어서 시집 이름을 그냥 『파주기행』으로 붙이고 그 기간의 과정을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시집을 두고 필자는 ‘노령사회 노령시학’이라는 ‘의미 덧붙이기’를 시도했다. 아내의 병원생활 이야기나 노령이 아니면 감지할 수 없는 성찰이나 순교신앙 같은 것들이 시의 핵심에 들어와 있어서 시의 정서를 숨기지 않고 개방하는 뜻에서 ‘노령’이라는 ‘늙고 병든’ 개념이 포함된 그 기피 대상을 처음으로 스스로 ‘노령, 노령시, 노령시학’이라 하고 오픈한 것이다.
중국 동정호 여행을 하면서 악양루에 올랐는데 그 아래층에는 천하 시인 두자미(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를 모택동의 필사로 쓴 시비가 서 있다. 모택동은 시인이자 정치가로 당시 57세에 필사하면서 자신의 콤플렉스인 ‘늙고 병든’을 살짝 숨기고 ‘늙어감’으로 고쳤다. 모택동은 늙음보다 병이든 것을 애써 숨겼다. 필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이번 아내의 병고에 대해 개방하고 나아가 노령시학까지 나아간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이 시집에는 「재의 수요일」 「이 빈들에 그대 서다 -순교자 김대건」 「예수 피정」 「아내의 시간」 「철제 피에타」 「직장」 「당번」 등이 신앙시편들이다.
“벼랑 하나가 우리집으로 굴러왔다/ 안개를 쓰고/ 허리를 두르고/ 그 위에 아내를 세웠다// 지금까지 별빛으로 빛났던/ 나의 아들과 딸과 손녀들, 평화와 주일과// 성당의 로사리오 마리아 주보와 거실의/ 십자가들이 흔들렸다// 벼랑은 천길이라 하지만/ 만길이거나 둥둥 띄우는 표류의 시간들/ 병실이 집이고 복도가 기도의 구절로 내왕하는/ 아 아내의 시간”
아내의 병으로 집과 성당과 생활이 표류하는 장소로 표현된다. 그때 예수님이 우리집에 계신다는 시편들이 쓰여 지게 된다. 내 직장이 아내라고, 내 생활당번은 오전반이라고 “나는 시간제 근무 같은 복무규정을 따지지 않는다”고 쓴다.
성 김대건은 “조선 갓끈이 내는 바람/ 라틴어체”로 살과 뼈 다 내어놓았다. 우리 같이 “내가 내놓을 시간과 자리는 ‘무슨 체’인지 「이 빈들에 그대 서다」가 사색의 고삐를 쥐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