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4.03.07 10:14

십자가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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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혜숙 보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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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내가 주님 수난을 묵상하며 이 뜨락으로 들어서야 하다니 두렵고 부담스러운 마음만 밀려온다. 사랑으로 굽어보시는 주님 슬하에 사는 우리는 늘 평화와 행복을 꿈꾼다. 지은 죄를 생각하고 희미한 신앙을 반성하지만 높이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의 고통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누가 못 박았나. 나, 너, 우리 함께이다. 함께 함께라고 죄들이 아우성칠 동안 묶이시고 창에 찔려 피 흘리시고 숨 거두시며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신 마지막 말 속에 우리 모두 있다.


사순절, 묵상한 것은 주님의 고통이고 슬픔이다. 부활해 다시 오신 기쁨 속에서 그 사랑과 아픔을 묵상한다. 


삼십여 년 내게 중심미사의 반주를 맡겨주시고, 어설픈 내 반주를 들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신앙을 용서해 주시리라 여기며 선율로 영성의 장을 누리며 살아온 것이다. 막중한 사명감으로 거룩한 미사를 이끌어야 하는 성가반주는 더없는 은총과 사랑이었음을. 행복하고 벅찬 세월을 주님 십자가 아래서 마음과 손으로 만지고 누른 셈이다. 건반의 노를 저으며 거룩함에도 젖어 보고 음률의 질곡 그 깊이로 스며들면서 나의 보잘것없는 신앙은 자랐고 찬송으로 함께했다. 


성가의 선율이 성당 안을 채우고 마음속으로 흘러갔다. 주님도 성모님도 듣고 계셨을 반주들, 행복한 세월이 삼십여 년이었으니! 지금은 화요일 저녁미사만으로 바친다.


성모님 서 계시는 성당, 고요한 성모님의 자애 속에 얕은 신앙도 용서받는다. 십자가를 올려다볼 때마다 간구 드리고 감사함 가득한 내 생애를 대신해 반주가 이끌어주었다.


그 더운 여름날 우리는 저 십자가 아래서 혼배미사를 올렸다. 연주복이라고 부탁해 만들었던 가냘픈 웨딩드레스를 지금도 깊이 간직하고 있다. 분홍장미 몇 송이와 아스파라거스가 전부이던 꽃다발을 들고 본당 층계를 올랐었지. 그때 이미 주님은 나를 점찍어 두셨을까. 타향살이 십여 년 세월 뒤를 생각하셨을까. 등단의 팻말을 붙여주시며 내게 베푸신 시인의 길로 인도하심도 주님이셨으리라 믿는다.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며 순명의 길을 걷는 사제들의 미사 집전에서 반주해 드린 일은 가장 복되고 잘한 일로 여긴다. 


이제 어느 눈물 어느 기쁨 웃음도 당신 안에서 갖겠다고 기도드린다. 밤의 별, 저녁노을, 다투어 피는 꽃들 그득한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주님을 사랑하며 느끼며 사는 행복도. 언제나 당신을 나의 심중 속에 심고 사는 날까지 감사드리며 때때로 장궤하며 기도드릴 것이다. 보잘것없는 묵상으로 영혼의 뜨락을 서성이는 저를 용서하소서, 주님.


내 죄는 세워두고/ 몸만 꿇어앉는다// 님이시여,/ 굽어보실 때/ 내 손잡아 이끌어주소서// 고요히/ 묵상하며 살라 하시네.

-졸시 <장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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