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69
Extra Form
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이범선은 『오발탄』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피해자』는 기독교도의 여러 강박적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최요한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고아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교회의 장로이다. 그런 아버지가 막상 주인공 최요한이 고아인 양명숙을 사랑하여 결혼하려고 하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자신의 외아들을 고아들과 전혀 차별 없이 키우고 그들을 위해 밤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던 최요한은 아버지의 이중적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아버지가 고아원을 운영한 것은 그 아이들을 사랑하고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하느님 아버지에게 충성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를 알게 되면서 최요한이 아버지에게 가졌던 신뢰와 존경심은 급격히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심약한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의 위선에 반항하지도 갈등을 극복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열정도, 용기도, 지성도, 신앙도 없는, 소위 허위나 악덕마저도 없는 완전한 등신’이라고 자학한다.


사랑하던 명숙은 고아원을 뛰쳐나가고,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어느 목사의 딸과 결혼하여 교회의 집사가 되고, 기독교 계통 학교의 교사가 된다. 그런 그가 만난 또 한 명의 허상적 신앙인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그의 아내는 기도는 꼭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다. 새벽마다 그녀는 우는 아이와 출근하는 남편을 내버려 두고 기도하러 교회에 간다. 이런 아내의 태도를 요한은 ‘맹신’이라고 여기고 그녀와의 생활을 ‘지옥’으로 여긴다.


그런 나는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밀어 맡기고 방금 낮잠을 자다 깨어난 때처럼 허심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내처럼 마치 머리의 비듬을 털듯이 예배당 마룻바닥에다 쉽사리 마음의 괴로움을 떨어버릴 재주도 못 가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종교인들의 허위적인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최요한은 우연히 20년 만에 술집 마담이 된 명숙을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 요한과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명숙은 수학여행지 경주까지 요한을 따라가고, 그곳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만다. 죽은 명숙을 끌어안고 요한은 한국의 목사, 장로, 그리고 기독교도인 모두가 그녀를 죽였다며, 그들 모두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라고 절규한다. 


최요한이 외친 이 절규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인습으로 화석화된 신앙에 대한 고발이다. 그런 인습의 틀에 얽매여 신앙의 참된 가치를 잃어버리고 혼미한 신앙의 어둠 속을 헤매는 종교인들도 결국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작가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큰 교리는 ‘진정한 사랑’ 위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성경책을 채찍 대신’으로 사용하며 고정화된 교리 문구만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것, 그리고 그 문구를 조금이라도 어긴 타인을 비방하기 위해 공동체의 형제자매들로 모인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적 형식을 떠나 마음으로써 서로 사랑하고 어루만져 주기 위해 모인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사명감에서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과 종교의 노예가 된 신앙인의 허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 역설적이게도 그 제목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데서 그들 모두를 감싸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210418 8면백그라운드(홈피용).jpg


  1. 사각지대와 국외자들

    Date2021.06.17 Category신학칼럼 Views291 file
    Read More
  2. 이제는 물 흐르듯

    Date2021.06.17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91 file
    Read More
  3. 여건이 되면 스테인드글라스 보러 한번 오세요 남성동성당

    Date2021.06.10 Category본당순례 Views759 file
    Read More
  4. 지혜로서 기름 부은 자-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Date2021.05.13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484 file
    Read More
  5. 성령 강림 대축일을 앞두고

    Date2021.05.13 Category신학칼럼 Views362 file
    Read More
  6. 지렁이 한 마리

    Date2021.05.13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202 file
    Read More
  7. 오랜 역사를 안고 새롭게 신심생활을 가꾸려는 함양성당

    Date2021.05.06 Category본당순례 Views713 file
    Read More
  8. 강박적 신앙에서 잃어버린 것-이범선의 『피해자』

    Date2021.04.15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269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