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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부활의 삶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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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


부활의 삶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게 하는 이 계절에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경축합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천년 전 예수를 스승으로 받들고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고뇌하고 방황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스승 예수의 죽음은 무능과 허무로 보였고, 부활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수께끼로 보였습니다.
“누구를 찾고 있느냐?” (요한 20,15)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던지신 물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빼돌린 것으로 오해하였고, 더더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망(迷妄)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었습니다. 그려는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빼돌렸다고 생각하고 그 시체를 찾는 데에만 매달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물음은 막달라 마리아의 미망을 깨우치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애타게 찾았던 것은 예수님의 시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찾아야 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누구를 찾고 있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은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이로써 막달라 마리아는 깨닫지 못하는 미망의 처지에서 깨달음의 처지에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 20,18)
막달라 마리아가 찾았던 것은 주검으로 변한 예수의 시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 속에 갇혀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즉 그분은 죽음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제 시체를 찾던 처지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처지에로 건너갔습니다. 그녀는 기뻤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을 이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뜻밖의 체험은 그녀로 하여금 “나는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라고 외치게 합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요한 20,19)
제자들은 스승 예수께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실의와 좌절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잠적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의 죽음이라는 충격적 현실이 가져다주는 도전에 맞설 용기를 갖지 못했고, 암담한 미래를 헤쳐나갈 지혜도 갖지 못한 채 두려움에 사로잡혀 일신의 안일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한마디 말씀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삶에서 용기있는 삶에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스승을 직접 목격하고, 부활이 지니는 의미를 체험하면서 부활에 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제자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활의 삶 - 건너가는 삶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 미망의 처지에서 깨달음의 처지에로 건너갔고, 그 결과 “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부활의 전령(傳令)이 되었습니다. 일신의 안일을 걱정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구차한 처지에 있던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바치는 용기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오늘에 죽고, 기존의 처지에 죽고, 재물에 죽고, 명예와 권력의 유혹에 죽는 것입니다. 모든 애욕과 집착에 죽지 않으면 결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 역시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이 전제되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삶이란 기존의 처지에서 죽고 새로운, 다른 처지에로 건너가는 것(파스카=건너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의 핵심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미사통상문 참조)라는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을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건너가는 삶, 부활의 삶을 살지 아니하는 믿음을 곧 죽은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이 참담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난제를 풀어 가는 실마리를 부활 신앙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지난날의 그릇된 의식과 관행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정의롭고 새로운 의식(意識)과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할 사람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회 복음화의 사명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의지를 바꾸어 새 처지에로 건너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죽어야만 다시 산다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축복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가득히 내리고 이 땅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1998년 예수부활 대축일에,
교구장 박정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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