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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허기원 마르첼리노 신부

소외된 채 흩어져 있는 이들

 

제33주일이자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오늘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이 땅 위에 자리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 안에서 고통을 견디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물질적이고 사회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날이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누가 가난한 이들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폰을 열어 ‘가난’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봅니다. 가난은 ‘몹시 힘들고 어렵다’는 뜻의 한자어 간난(艱難)에서 종성 ‘ᄂ’이 동음 축약되어 나온 단어라고 합니다. 좀 더 풀이하자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난’이라 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권리를 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죠. 이점에서 저는 ‘어떤 부류에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기준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특정한 부류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부류를 형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심지어 우리 교회 안에도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새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따돌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동시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김용규씨의 『데칼로그』라 는 책에서는 제5계명인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계명을 ‘소외’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해석합니다. 존재론적으로 해석했을 때, 이 계명이 담고 있는 살인의 참 뜻은 육체가 아닌 영혼을 죽이는 ‘존재론적 살인’ 혹은 ‘소외시킴’이라는 것이죠. 인간에게는 ‘소외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고, ‘소외당하는 고통’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제5계명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말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사람들, 가난한 이, 병에 들린 이, 세리, 죄인들은 하나같이 소외되어 어떤 부류에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모든 이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줍니다.(다니 12,1; 마르 13,27 참조)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것은 특정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고 소외된 채 흩어져 있는 이들을 모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땅 위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가운데, 당신께서 선택하신 모든 이들을 모으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맞출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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