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9.08 11:41

기우杞憂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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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월춘 프란치스코 시인

220911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홈피용).jpg

 

세상이 온통 초록의 향연으로 짙은 생명의 팔월이다. 나이 예순 줄에 거창 골짜기로 오미자 농사지으러 들어간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산청휴게소에 들렀다. 코로나 시대에 평일인데도 제법 번잡하다. 휴게소엔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 때문에 조선업을 비롯해 경기가 안 좋다고 매스컴마다 아우성이지만,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하긴 이 나이 되도록 경기 좋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사람들은 언제나 호들갑인가 보다 싶지만.


도시 근교의 맛집들은 언제나 손님들로 넘쳐나고, 텔레비전에서는 요리 관련 프로들로 가득하다. 일명 ‘먹방’이다. 사람들의 건강은 아예 관심조차 없고, 많이 먹고, 잘 먹고, 닥치는 대로 먹어야 살아남는다는 인상을 준다. ‘선찍후식’이라는 말도 있다. 먼저 사진을 찍고, 그다음에 음식을 먹는다는 이 말도 식욕 절제와는 거리가 멀다. 건강하게 먹는 즐거움과 소중함은 어디로 가고 없다. 뚱뚱한 개그맨들이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요리사 대신 세프라는 말이 표준어가 될 정도다. 중고생들의 미래 직업 일 순위가 요리사가 된 지 오래다. 가히 막장 ‘먹방’이다.


생초 어탕국수 집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면 요리이기도 하지만, 얼큰한 민물고기 국물에 푼 국수 가닥의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근처를 지날 때는 꼭 들러 먹었던 음식이니 이날도 빠트릴 수 없다. 짐작은 했지만, 집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섰다. 반 시간을 기다려 맛을 본다. 


바야흐로 미식 열풍 시대다. 때마침 한류열풍이 불어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창조경제의 한 축이 된 미식의 대중화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온 나라를 휩쓰는 미식 열풍이 불안한 건 무엇 때문일까. 로마 시대도 배불리 먹다가 망했고, 브렉시트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영국도 에드워드 7세 때 이런 미식과 온천 열풍이 불어 대영제국의 종말을 불러왔던 적이 있다.

 
또 요즘 맛집 찾아서 즐기기와 한 축을 이루는 것이 건강 산업 붐이다. 텔레비전 프로 중 ‘나는 자연인이다’는 건강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 그야말로 자연을 벗하며 사는 낙원(?)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몸에 좋다는 식품이 하나 나오면 품귀 현상을 일으키는 정도란다. 나도 그런 자연식품에 관심이 많다. 건강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데다 지병이 있으니까.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의 공공문제에 관심이 식어갈수록 식도락과 건강에 대한 이상 열기는 더 높아진다고 한다. 부디 별걱정을 다 하는 촌부의 기우이길 바란다. 육신의 건강도 그렇지만 정신의 건강, 나아가 영혼을 살찌우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우리 삶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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