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9.15 11:37

너무 사적私的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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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선희 드보라 시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할 때, 신앙생활의 내용은 무엇일까? 보이는 면이 있고 보이지 않는 면이 있을 것이다. 보이는 면은 노력할 수 있다. 열심히 미사참례하고, 봉사활동하고, 기도생활하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면은……. 가끔씩 강론을 들을 때나 책을 읽을 때 짓눌리는 기분이 든다. 보이는 활동으로 채울 수 없는 것, 자라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책에서 자녀의 합격이나 자신의 승진 등을 청하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은 곤란하시겠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의 행운이 누구의 불운이 되는, 현실적인 바람에만 매달리는 데 대한 염려가 섞인 말일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원기도는 흔히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가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므로 폄하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필요가 우선하고 절박하지 않을까. 나의 기도 또한 대부분 개인적인 바람들로 채워진다. 한순간의 곤란함을 모면하기 위한 기도, 돌아보기도 싫은 처신을 용서해 주십사 청하는 기도, 말을 옮기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은 기도도 드린다.


브루그만은 시편을 해설하면서 시편 속에 고백된 내용은 “수치스럽거나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것”들일 수 있으나 “화자들은 철저하게 주님께 속해”있다고 했다. 그는 시편이 세상의 “어두움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어두움이 있는 그곳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이라 했다. 이스라엘은 무시무시한 원한의 문구들을 모두 주님께 아뢰며 그분께 맡겨드림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소진되지 않는 끈덕진 소망’을 간직했다. 기도드리는 그 순간, 우리 또한 오롯이 ‘주님께 속’한다. 모든 무거운 짐을 맡겨드리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도는 늘 일방적이고 나의 필요에만 급급했다. 자라지 않는 마음은 바로 이런 편향성 때문일 것이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기도 중에 청하는 빵은 나의 빵이 아니라 우리의 빵”이라 했다. 개인적인 기복에만 매달린다면 주님 사랑에 닿을 수 없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우리가 “두 손 가득 받기를 기대하면서도 우리 자신에 대한 애착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하고 “소망을 실현해 보려고 애쓰지도 않고, 지상의 모든 것에서 초연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영적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너무나 내 마음을 읽는 말이다. 나를 채우는 데만 골몰한 기도와 활동이 부끄러워졌다.


“신앙이란 혼돈 한가운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라고 브루그만은 말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발을 뺀 조용한 곳이 아닌 바로 세상 속에서, 데레사 성녀처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려고 힘껏 노력’하는 것이 바로 나의 기도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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