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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이 모든 게 신의 뜻입니까. 우리는 끝없이 묻는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삶은 힘든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정말 신은 있는가. 이승우의 『허기와 탐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작품이다. 그의 연작 소설집 『사랑이 한 일』에 실려 있는 이 작품은 늙고 눈이 먼 이사악과 그의 맏아들 에사우의 이야기이다.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이사악이 어느 날 맏아들인 에사우를 불러 말했다. “아들아, 네 아버지는 이제 늙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너는 나를 위해 화살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사냥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가져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음껏 축복하겠다.”


이사악의 장자인 에사우는 동생인 야곱을 섬기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신의 뜻과 달리 왜 이사악은 에사우를 축복해 주겠다고 했을까. 작가 이승우는 그 이유를 이사악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아버지가 자신을 제단에 번제로 바치려고 한 경험은 이사악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충격으로 어린 이사악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복형 이스마엘을 찾아 광야로 간다. 거기에서 그는 이스마엘이 건네준 야생의 음식을 먹게 된다.


그 순간 이사악은 자신이 그날 먹은 형의 음식으로부터 아마도 평생 동안 놓여나지 못하리라는 걸 예감했다. 사는 내내 허기에 시달리며, 참지 못하며, 참지 못한 채 참으며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예감대로 되었다. 그는 탐식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이사악은 늙을 때까지 에사우가 사냥해 온 야생의 음식을 먹고 또 먹는다. 이렇게 끝없는 허기와 탐식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사악만이 아니다. 맏이의 권리를 빼앗기고 광야로 버려진 이스마엘, 그의 어머니 하가르, 그리고 에사우. 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에 의해 불행에 빠진 이들이다. 


신의 뜻을 ‘인정’하지만 ‘이해’는 할 수 없기에 그 괴로움으로 탐식에 빠진다. 그저 끝없는 허기에 맛도 모르고 탐식한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는데, 이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법과 도리를 뛰어넘은 신의 섭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악은 인간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다. 광야에 내쳐진 이복형 이스마엘과 달리, 제물이 되었던 그 자신과 달리, 에사우만큼은 장자로서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의 뜻 앞에서 이는 부질없는 것이어서 결국은 운명대로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다. 


이 바꿀 수 없는 신의 뜻(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앞에서 에사우는 소리 내어 울며 절망한다. 그런 그에게 이사악은 “너는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른다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애써 힘을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신의 뜻을 ‘이해’하는 단계, 참신앙의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힘들고 불공평한 삶에서 비롯되는 허기와 탐식에서 벗어나 신앙의 구원을 받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묘사하는 에사우의 삶은 이렇다.


그는 애써 힘을 기름으로써, 즉 자기에게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된 일들을 참음으로써 아우의 멍에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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