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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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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예수의 손(조민아 그림)

 

‘결코 전과 같지 않을 봄’이 일곱 번째 돌아왔습니다. 슬픈 4월, 그대들이 잠긴 차가운 바다가 또다시 우리 마음에 먹먹하게 차오르는데, 꽃은 그 해 봄처럼 여기저기서 펑, 펑, 망울을 틔웁니다. 그대들처럼 천진하게 웃는 노란 꽃들만 보면 우리는 아직도 마음이 저려 발길을 떼지 못합니다. 이제는 드물게 눈에 띄는 손목의 노란 팔찌, 가방 끝에서 흔들리는 노란 리본, 자동차 범퍼의 노란 스티커를 보면 그대들이 돌아온 것 같아 낯선 이라도 낯설지 않고 악수라도 청하며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평안한가요. 그대들 있는 곳은 평안한가요.  


그대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들이 땅도 바다도 아닌 가슴에 그대들을 묻고 우리 산목숨들에게 돌아와 버텨온 시간이 칠 년입니다. 사랑하는 그대들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없어 가족들은 죽음보다 힘든 삶을 선택했습니다. 일곱 해가 지났건만, 아직 그대들이 죽어 간 이유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오늘도 외롭고 모진 거리에 섭니다. 그대들이 놓아 준 밑불로 이뤄낸 촛불 혁명이건만, 아직도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은 우리에게 아득하기만 합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또 안전과 신뢰가 기반이 되는 사회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가 왜 이리도 매번 복잡한 절차와 반대 의견에 부딪쳐 무너져야 하나요. 그 일곱 해의 시간 동안 우리는 또 너무나 많은 아까운 목숨들을 재난 사고로, 안전 불감증으로, 생활고로, 혐오와 편견으로 인한 자살로 잃어 그대들 곁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대들을 실은 세월호가 바다로 잠기던 7년 전 그날이 성삼일을 앞둔 수요일이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해마다 부활의 의미를 되물어야 할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부활의 아침에 상처 입은 그대로 돌아온 예수의 몸처럼, 일곱 번째 돌아온 “이전과 같을 수 없는 봄”에는 그대들이 떠난 자리가 남긴 상처가 깊게 남아 있습니다. 흉터가 선연했던 예수의 몸은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고통의 기억 없이 부활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웠겠지요. 그가 십자가에 매달리던 그날의 절망과 회한을 잊지 말아야만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겠지요. 그 기억을 놓지 않았기에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단지 머리로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삶을, 그의 부활을 살아 낼 수 있었겠지요. 그대들이 남긴 상처도 우리에게 그 남은 자들의 삶을 일깨웁니다. 아픈 기억, 깊은 수치심, 무거운 죄책감을 마주하고 끌어 안지 않고서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가 사는 삶이란 죽음과 부활 양자택일의 삶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에 더 질기고 더 치열하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을요. 


이렇게 다시 그대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곱 번째 봄이 부끄럽고 안타깝기만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대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모진 싸움을 견디고 있는 그대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손을 건넵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질서에 균열을 내고, 거짓된 평화로 위장한 위선적 가치들을 흔들어, 사람 냄새 땀 냄새나는 세상으로 나아가며 그대들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시간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새로운 생명으로 이행하는 숱한 파괴와 무너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겨울 끝에 봄이 어김없이 돌아와 생명을 쏟아내듯, 죽음의 시절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 끝에는 반드시 삶이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혼돈 속에서 서로 서로를 버팀목 삼아 생명을 열어갈 것입니다. 봄을 맞을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그대들에게 약속했으니까요.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그대들의 선한 웃음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대들,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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