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봉헌의 참된 길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아기를 낳고 정결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산모는 아기를 낳을 때 몸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데, 당시 피는 부정한 것이기에 산모는 아이를 낳고 일정 기간, 곧 40일이 지난 후 정결례 예식을 치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탄 다음 사십 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주님 봉헌 축일은 386년부터 예루살렘에서 지내오다가 450년이 되어서는 초 봉헌 행렬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리고 미사 전례 중에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초를 봉헌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일치하여 나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봉헌과 관련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봉헌 생활하는 수도자를 기억하고, 수도 성소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로 지내길 권고하시며 ‘봉헌 생활의 날’로 삼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어린이 미사에 참례할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봉헌하고 자리에 돌아와 뒷자리에 앉아계신 수녀님을 가리키면서 제게 귓속말로 “왜 수녀님은 봉헌금을 안내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이미 가진 모든 것, 곧 당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했기 때문에 돈을 봉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질문이었지만, ‘봉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봉헌이란 내가 가진 일부가 아닌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모든 것,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은 예수님을 두 팔에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시메온은 자기 삶 전부를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끝까지 기다렸기에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찬미와 봉헌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과 아기 예수님을 봉헌한 성모님에게만,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수도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 자신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되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사라지는 초를 닮아 우리도 주님의 빛을 비추고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