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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전주홍 요셉 신부

저∼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교포사목 시절 알고 지내던 미국인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한국말에 능숙해서 종종 미사를 부탁하기도 하고 함께 봉헌하기도 했었는데, 그분이 미사를 주례할 때면 항상 분심에 빠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던 신부님이지만 참회예절 때는 항상 “저∼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과 감사기도에서도 예외 없이 전능하신 분은 저∼능하신 분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하느님은 정말 저능 아니 그것도 못 미쳐 아주 무능하셨던 것이 아닐까? 특히 세상에서 아무런 죄 없이 고통받는 이들을 볼 때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짙어집니다. 분명히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면 그리고 정말 세상을 사랑하신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온갖 고통과 악을 모두 없앨 수 있으실 텐데,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접합니다. 이처럼 힘없이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을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런데 오늘 제2독서의 필리피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정말 무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2,6-7)


이처럼 사람으로 오셨어도, 권력과 강력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모진 고문으로 고통을 받으시며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결국 죄인이 짊어지는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십자가를 마주하십니다.(이사 50,6-7)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과 고통을 한방에 싹 쓸어버리지 아니하고 왜 이처럼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시어 수난을 받으실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하는데 이것이 하느님이 전하시는 사랑의 방식은 아닐까 여겨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전능하고도 강력한 팔을 휘둘러 시시때때로 세상의 죄를 척결해버린다면 우리는 그 강력함 앞에서 두려워 떨 것이며 그러한 방식 앞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란 아무 소용없이 기계처럼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모습에서 무슨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공포에 질려 순종하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당신의 전지전능을 행사하여 그때그때 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느님, 그리하여 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하느님이 아니라 나와 함께 발걸음을 맞춰 주시는 하느님, 그러기 위해 연약한 인간으로 다가오시어 수난을 받은 하느님. 하느님의 앞서가신 그리고 함께하는 그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걸어가는 이 길에서 주저앉지 않고 기운을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일 수난 당일 자신을 살리고자 십자가에서 뛰어내렸다면 밉살스럽던 그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잠시 혼내 줄 수는 있었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십자가를 져야 하는 무력한 사람들을 위해 그분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을까. 예수님, 그분은 그날 무능하고 무력하셨으므로 오늘 힘차게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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