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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주효상 알렉산델 신부

도시락 하나의 미소

 

매번 느끼는 생각이지만, 전례력의 마지막으로 나아가는 이 시기에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말씀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간의 복음만 돌아보더라도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시는 주님께서 종말에 대한 비유들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또한 하늘의 징조보다 시대의 표징을 분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끔 한국 방송을 보면 벌써 따뜻한 패딩 광고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은 벌써 기온이 많이 떨어졌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태국 파타야에는 여전히 찌는 듯한 더위에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나날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이곳 사목지에 부임했을 때와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로 인한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불빛을 잃었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길거리엔 노숙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큰 번화가들이 이제는 슬럼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차를 타고 해변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곳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이런 시국에 많은 이들이 모여서 무얼 하나 지켜보았습니다. 바로 한 끼 식사를 제공받기 위한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줄들이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맘에 모여 있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 나는 위험한 시기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나서기로 했습니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 주에 한 번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무료급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본당 교우들과 멀리 한국에서 온 도움들로 좋은 도시락을 만들었고, 급식을 받아 가면서 행복해하는 이들의 모습에 현지의 지역 경찰들도 도움을 주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저에겐 마음속 미안함을 씻어내면서, 그들의 미소에 저 또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시대의 징표라는 것, 크게 거창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우리의 삶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 시대의 징표입니다. 


특별히 이번 주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복음 속 주님의 말씀을 본받아 교황님께서도 직접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의 모범과 교황님의 모범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마주하고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으며 직접 실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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