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0.20 13:20

전교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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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준호 라파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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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추억의 계절인가 보다. 대학 시절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인문대 앞 ‘자하연’으로 불렸던 호숫가가 눈앞에 그려진다. 호젓한 멋스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이 꺼려지는 장소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홀로 커피를 마시며 명경지수를 관망하는데 웬 낯선 이들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한 명은 남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여학생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복음을 접하게 될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이후에도 그들은 사람만 달라졌을 뿐, 캠퍼스 어디든 혼자 있으면 어김없이 다가왔다. 친구와 동석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던 나로서는 미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학생 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멀리서 먹잇감-그들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을 물색하듯 목표물을 노리는 그들이 보였다. 아마도 신경을 너무 써서 더 자주 보였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요령도 생겼는데,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피한단 말인가, 하며 당당해지기로 했다. 서로 간에 합일점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간신히 내었던 용기의 결과는, 그들이 나를 예배당에 데려가길 원했다는 것이다. 성당에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왜? 그래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진심인 것 같았다. 문득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전교에 적극적일수록 왜 사람들은 더 멀어지려 할까? 전교의 강도와 방법에 혹시 문제가 있을까? 한동안 그런 질문들을 자신에게 하다가 어느덧 그 일은 기억 속에 묻혀버렸다. 


바야흐로 만물이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는 사색의 계절이다. 전교 주일에 즈음하여 대학 시절의 그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굳은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사람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장담할 것이 아니라, 믿음 앞에서는 오로지 진실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성경의 한 구절이 와닿는다.


“진심으로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최근 유튜브에서 가톨릭 찬양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열일곱이다’라는 채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청년 미사에서 부르던 성가들이 왜 유튜브에는 없는지 아쉬운 적이 많았다. 그에 반해서 개신교의 찬양 노래는 넘쳐났다. 그러던 중에 가톨릭 찬양 단원 소식은 단비처럼 반갑다. 단원인 추 예레미아 씨는 인터뷰도 진행하는데, 그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군 시절에 대대장님이 떡볶이 하나를 드시는 데에도 성호를 긋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다고 할 정도로 봉사하던 교우들까지 그 모습들이 자신을 성당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주모경을 바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그를 보면 나도 가톨릭 찬양에 이끌린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향기가 되어, 사람들을 몰래 이끄는 전교의 향기가 가을의 한복판에 드리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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