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0.27 13:17

어머님께 청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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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굉주 에스더 소설가

“으아아악”


저녁 어스름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마자 저 끝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검은 물체를 봤습니다. 비명을 내지르며 휙 지나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습니다. 한 젊은 엄마가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빠르게 뛰어갑니다. 엄마의 입에서 또다시 괴성이 터져 나옵니다. 아이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단지 저편에 서 있는 중앙병원을 향해, 움직임이 없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다급히 뛰어갑니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연이어 고함을 지르며 달려갑니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뒤범벅된 엄마는 두려움, 안타까움, 걱정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119를 부르는 것이 늦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아파트 사이를 가로지르기만 하면 병원에 곧바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엄마는 아이를 안고 초인적인 속도로 뛰어갔습니다. 찰나였지만 긴박함과 심각함은 극도에 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펐습니다. 그 낯선 아이를 향한 제 마음도 절박해졌습니다. 


‘성모님!’
어머님을 불러 기도드립니다. 늦지 않길 바랍니다. 아이가 큰 병 아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예루살렘에 가신 적이 있지요.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성모님은 예수님이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걱정하며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에 가셨어요. 그때 성모님의 심경을 상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아들, 그를 지키지 못했으니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까요?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으셨을 때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셨습니다. 서운하셨을까요? 성모님은 예수님의 고난을 고스란히 지켜보시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천상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아껴주고 싶으실까요?


하느님의 사랑으로 큰 숨 내어 쉬고 아침에 눈 뜨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밤이 되면 무사히 잠자리에 듭니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돌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책하며 반성합니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 게 제일 잘 사는 방법이다’라며 타인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보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관계를 맺는 데 엄청 서투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성모님 앞에 서면 ‘사랑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 앞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게 됩니다. 


이 낯선 아이를 위해 기도를 올립니다. 제가 사랑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오늘은 성모님께 간절히 청하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도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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