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1.03 13:18

거듭된 그림자의 음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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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

내게는 F4라는 지인그룹이 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제법 있긴 하지만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의기투합이 잘 되었던 동지들이다. 그냥 Friend, 친구 4명이라고 F4이다. 이 F4에게 요 몇 년 이별의 위기가 들이닥쳐 서로 끙끙 앓고 있다.


F1이 먼저 이별을 맞이해버렸다. 자신을 곁에서 살뜰하게 뒷바라지해 주었던 여동생이 암진단을 받고 손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겨우 쉰 살이 된 동생을 보내는 때에 우리는 그를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쩌다 독신으로 산 그에게는 피붙이의 느닷없는 죽음이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었다.


그 일을 겪고 나니, 우리는 F2가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다. F2는 그 이태 전부터 암투병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회복지 일을 함께할 때도 워낙 성격이 활달하고 몸을 던져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아파도 거뜬히 치유되리라는 기대 같은 것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더 젊은 사람이 속절없이 떠나는 걸 보니 마음 놓을 일이 아니었다. 병의 진행과 치유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부친, 남편, 딸 셋, 챙겨야 하는 식구가 많은 F2는 그 식구들의 입과 눈이 큰 힘이 되는 듯했다. 다행히 잘 이겨내며 점점 허리를 펴는 중이다.


나 F4에게 위기가 닥친 건 지난해 4월이다. 로마에 있던 수녀언니가 중병으로 갑자기 귀국하여 우리 형제자매들이 매달리게 되었다. 한참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의지하던 언니이니, 부모 곁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울며불며 뛰어다녔다. 언니는 대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속에서 죽었다 살아나기를 여러 번 하며, 그래도 지금까지 주님을 찬미하고 있다.


“하이쿠!” 소리가 절로 났다. 올여름 F3마저 모친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그는 서원한 독신이라 오랫동안 홀로 원룸에 살다가, 모친과 살림을 합쳐 알콩달콩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로한 모친이니 쉽사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반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며 애태우는 걸 지켜보게 되었다.


잘 나가던 F4에 우환의 릴레이가 이어져 만남이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서로에게 위로하는 말문이 자주 삐걱거리며 막혔다. 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냐고 반문하다가, 거듭된 그림자의 음습에 손을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일로, 자신의 병으로, 가족 뒷바라지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고받는다. 때로는 어두움에 초연해져서, 의연한 태도를 가진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어쩔 수 없구나! 더 많이 아픈 순서대로도 아니고, 나이 많은 순서대로도 아니라, 데리고 가시면 따라야 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멀쩡한 나라고 마음을 놓지 않기로 한다. 우리는 저마다 노심초사하며 백방으로 손을 쓰고, 라자로를 살리신 것처럼 기적을 달라고 기도로 매달리지만, “다 내려놓아”라고 하시면 겸허히 손을 펼칠 마음을 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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