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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하얼빈』은 김훈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금방 짐작되듯이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위인’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추어 먼 하얼빈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서른한 살 청년의 갈등, 두려움, 신념을 다룬다.


안중근은 ‘도마’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가 믿고 의지하는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인물이다. 그는 안중근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그 스스로 종교적 교리와의 관계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안중근은 동양 평화를 위해 반드시 이토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에게 그러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거사 후 헌병에 체포되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부활절 전에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 부활의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간구하는 그는 여전히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안중근은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기도 했다. 그가 행한 일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이었기 때문에 가톨릭 교구에서는 안중근을 거부했다. 빌렘 신부는 그런 교구의 명령을 어기고 안중근을 찾아간다.  


도마야, 나는 아직 너를 도마라고 부른다. 네가 그런 말을 나에게 하고 싶은 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이 네 마음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네가 너의 영혼을 나에게 의지하고 싶다면서 나를 불렀을 때의 너의 마음을 나는 또한 안다. 그러니 너는 너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아라. 우선 너의 마음에 기도해라.


교회 밖의 일은 은총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일까. 안중근이 유복한 삶을 버리고 ‘죄’의 길로 들어선 것은 고통받는 수많은 인간의 삶을 사랑하고 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또 신앙인이기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고뇌도 없을 수 없었다. 신부는 그에게 마지막 고해성사를 준다.


안중근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빌렘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들었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사형수의 머리와 사제의 머리가 가까워졌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숨소리처럼 들렸다. 옥리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목소리가 끊기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빌렘은 침묵 속에서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안중근은 누구보다 평화롭게 ‘도마 안중근’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스스로 신앙이 있었고 자신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빌렘 신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행동, 행한 이후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던 청년 안중근. 이 청년 안중근을 도마 안중근으로 죽을 수 있게 해 준 그 힘처럼 이 교회 밖의 신앙에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한국천주교회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죄인으로 남아 있던 도마 안중근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죽음 이후 80년이 지난 후다. 2000년 한국천주교회는 안중근의 행위는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히며 안중근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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